[경제프리즘] 기업과 디자인 예산

날이 어느새 봄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3월말만해도 검정 패딩을 입고 마스크까지 쓴채 출근한 직원에게 “잘했다. 모양이 문제냐 피곤하면 면역력 떨어진다” 라고 칭찬을 해댔다. 옷을 두툼히 입어도 마음이 여전히 허했기 때문일까? 2~3월은 참으로 암담했다.

대구를 비롯한 지구촌 곳곳의 아픈 소식에 ‘인생은 복불복이야’ 하고 대자연의 생물학적 반응에 인간이 참으로 초라하게 느껴져 정말 아무런 의욕이 없기까지 했다. 하지만 불과 며칠 사이에 노릇노릇 피어 오르는 개나리와 물빛이 돌기 시작하는 여린 가지들을 보며 마음을 다독이게 될 줄이야.

디자인을 업으로 하다보니 미팅과 컨설팅으로 과제를 엮고 끊임없이 제안을 하던 업무가 코로나19로 어느 순간 얼음 땡 하고 순간정지됐다. 지자체에서 발주하던 일들도 시민협의가 필요했던 부분에서 멈춰서 기약 없이 과업 중지가 됐고, 부스디자인도 하고 카다로그도 만들며 해외마케팅을 야심차게 준비해오던 상담 기업들은 막막함에 울상이 됐다.

“컨설턴트님, 어떻게 해야 될까?” 기업 대표님의 구수한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순간, “예, 제가 찾아 뵐게요”하고 마스크만 챙긴 채 부랴부랴 차를 몰고 나섰다. 길가의 화사한 벚꽃이 너무나 얄밉게 눈에 들어 온다.

기업 대표에게 말했다. “대표님 위기는 항상 기회입니다. 그동안 숨쉴 틈 없이 뒤도 안돌아보고 앞으로 나가셨으니 이제 이 위기를 기회삼아 한 번 더 점검의 시간을 가지시는 게 좋겠습니다. 오프라인으로만 하셨던 마케팅을 이젠 온라인화도 생각해 보시고, 기업 로고랑 포장도 리뉴얼해서 브랜드화 하시고 제품라인도 점검하시고 할 일이 얼마나 많으신데요”라고.

하지만 “올해 예산을 점검해보니 부족하다. 제품개발비에 제품개발을 위한 연구소 가동 물류비, 재료구입비, 해외 마케팅비 모두 잡혀 있는데 개발비에는 원자재비와 생산 인건비뿐”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디자인을 서비스업 정도로 생각하나보다. 제품만 좋으면, 가격만 낮으면 물건이 팔리던 시대는 벌써 20여 년전인데 설비는 매년 업그레이드 하고 스마트공장도 꿈꾸면서 디자인은? 섭섭한 마음이 앞선다.

소비자의 첫 선택은 사용 전의 제품 질, 단돈 몇 천원의 가격의 차이보다 기업과 제품의 브랜드 이미지가 결정한다. 그런데 왜 예산에는 항상 디자인 개발비가 빠져 있는 걸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온라인의 대중화, 기술력의 평준화로 이제 소비자들의 눈은 높아졌고 특허 기술 외 원천기술도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 핵심은 소비자의 마음을 결정짓게 하는 브랜드 파워-디자인의 배려인 것이다. “내년엔 개발비의 0.1%라도 디자인개발비를 넣으셨으면 합니다”라고 조언을 드리면서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디자인개발사업을 찾아 권해드렸다.

한결 따스해진 햇살이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느껴진다. 대한민국 중소기업 대표님들 파이팅입니다.

김희경 인천디자인기업협회 대외협력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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