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가 있던 날 오후, 최근 새로 집을 마련한 지인이 있어 그와 함께 집 구경을 갔다. 아직 이삿짐을 옮기기 전이어서 새로 도배와 장판을 하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천장과 방에 도배하는 사람 중에 20대 젊은이도 있었다. 그의 얼굴이 좀 달리 보여 “투표 결과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관심 없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젊은 사람이 선거 결과에 관심이 없다니…’하고 다시 물으니 취업하는 것밖에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해왔는데 코로나로 모든 시험이 연기되는 바람에 이렇게 아르바이트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도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고 커피숍이나 양식당 같은 곳에서는 아르바이트 2~3명을 뽑는다고 하면 거의 100명 가까이 몰려오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런 장판 도배 노동판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창 젊음의 꿈을 펼칠 젊은이가 여기저기 장판 도배 현장을 쫓아다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솔직히 오늘 하루 일자리가 급한 청년에게 어느 정당이 몇 자리 의석을 차지하고, 정치개혁이 어떠니, 하는 말은 사치에 불과할 것이다. 사실 지난해 3월 대비, 올해 기업의 채용공고가 33%나 줄었으니 취업은 ‘좁은 문’에서 ‘바늘구멍’이 되어버린 셈이다. 아르바이트 시장도 마찬가지다. 아르바이트 포털 사이트에 의하면 지난 2월7일부터 3월6일 사이에 서비스업은 26%, 외식 음료업은 25% 아르바이트 수요를 줄였다.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취업준비생, 아르바이트, 이 모두를 포함하여 점점 높아 가는 청년 실업률은 선거에 이겼다고 춤을 추고, 선거에 졌다고 울분에 떠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정말 시급한 것이다. ‘선거 결과에 관심 없다’는 장판과 도배 아르바이트생의 대답이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지난 2월9일 문재인 대통령이 민생경제를 살피고자 충남 온양시장을 방문했을 때 한 반찬가게 여주인이 “거지 같다”는 말로 실정을 말했다가 뜨거운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었는데 사실 자영업자, 영세상인, 청년실업 상태가 말로 형언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 <기생충>에 가려 있었지만 지난해 송강호 주연, 조철현 감독의 <나랏말싸미>도 감동적인 장면이 있었다. 여기에서도 <기생충>에서처럼 세종대왕 역의 송강호가 열연했는데 특히 세종대왕이 가뭄이 들어 농민들이 아우성을 치자 기우제를 지내는 모습…. 그 진지하고 연민의 정이 가득한 세종대왕의 표정에서 애틋한 ‘애민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당시 가뭄이 들어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망치는 것이고 그것은 곧 백성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었다.
그러니 비를 기다리는 세종대왕의 간절함이 오죽했으랴! 사실 세종실록에는 ‘민위식천(民爲食天)’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한 마디로 ‘밥이 하늘이다’는 이야기다. 백성이 배가 고프면 아무리 뜻 깊은 담론을 펼쳐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 당장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못 구해 가슴 태우는 청년에게 검찰개혁이 어떻고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가게 문 앞에 ‘휴업합니다’하는 안내문을 써 붙이고 돌아서는 자영업자에게 한국 코로나 방역이 모범국이라고 홍보해 봤자 얼마나 먹히느냐는 것이다. “코로나로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했다는 어느 영세 상인의 말도 그래서 실감이 가는 것이다. 어쩌면 코로나보다 무서운 것이 경제다. 따라서 국회의원 새 금배지를 가슴에 단 선량들은 ‘밥이 하늘’이라는 세종대왕의 말씀을 깊이 새기길 바란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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