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C대학 인근의 생선 초밥집을 지인과 함께 들렀다. 식당은 점심 시간이 훨씬 넘긴 시간인데도 좌석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붐볐다. 그동안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와 상관없이 손님들로 북적이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생선 초밥은 젊은 세대들과는 거리가 먼 어른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었는데 오히려 손님들 90%가 젊은 대학생들이었고 나이 많은 사람은 어쩌다 한둘 보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젊은 남녀 학생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게 꼭 이방인 같았다. 어떻게 해서 이 초밥집을 젊은 대학생들이 점령하게 되었는가. 한참을 서서 이것저것을 살펴보았다.
첫째, 일식집에서 초밥을 시키면 넓고 큰 접시에 꽃잎을 놓는 등, 여러 가지 장식을 해서 가져 온다. 그래서 옛날부터 일본 음식은 눈으로 먹고, 한국 사람은 배로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식당은 큰 접시를 없애 버리고 30㎝ 정도의 좁은 나무 판에 초밥 10개를 나란히 얹어 가져 온다. 쓸데없는 장식도 없다. 소위 ‘스키다시’라는 서비스도 없다. 그러니 큰 접시에 눈부시게 차려 내놓는 초밥이 아니어서 부담 없이 가볍게 먹을 수 있고, 가격도 대학생들에게 무겁지 않은 1만원대.
초밥 10개는 광어, 연어, 골뱅이 등 고르게 나열되어 있어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게 했고, 거기에 따라나오는 작은 공기의 메밀국수 (소바)를 먹으면 포만감까지 느끼게 된다.
두 번째는 종업원들이다. 일반 횟집 (일식집)처럼 잘 차려입은 아주머니들이 아닌 젊은 또래의 아르바이트생들이어서 역시 대학생들에게 부담감을 덜어주고 친근감마저 준다. 실내 음악도 젊은이들 취향에 맞는 팝송.
이렇게 일식 초밥 식당이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체질 변화를 일으키면서 젊은 세대들을 자연스레 끌어들인 것이다. 우리의 정치도 젊은 세대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이 현실을 벗어나려면 초밥 식당과 같은 변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한 여론조사에서 젊은 세대들의 보수당 인기가 선거 때보다 더 추락하는 것을 보면 이런 체질개선이 절실함을 느낀다. 말하자면, 요즘 유행하는 은어, ‘꼰대’의 탈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나 학생들이 잔소리 많은 선생님을 가리킬 때의 은어, ‘꼰대’가 이제는 일반화되고 외국 언론에 까지도 소개될 정도로 정치권에서도 자주 회자 되고 있다. 이 은어가 갖는 부정적 이미지는 ‘완고한 고정관념’의 소유자들. 그래서 가령 ‘꼰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추운 날 장갑을 끼라고 하면 옳은 소리인데도 꼈던 장갑을 벗어 버리는 조건 없는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수출이 급감하여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그러려니 흘러 버리고, ‘불이야!’ 하고 소리쳐도 놀라지 않는 이를테면 ‘공감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한다.
그렇다. 바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공감의 벽’을 정치가 허물지 못하는 것이다. 이 벽을 허물지 못하면 정치, 특히 보수정당은 그들 만의 외로운 무대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안타까운 것은 이와 같은 위기를 그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혈압이 올라가도록 자기주장만 완고하게 설득하려는 것으로는 젊은 세대와의 ‘공감의 벽’을 허물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보수의 지도자로 나서겠다는 사람 중에는 굴착기라도 동원하여 벽을 헐어 버릴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생선 초밥집 사장처럼 기존의 이미지를 깨뜨리고 식당 좌석을 젊은이들로 꽉 채울 ‘착한 꼰대’가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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