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없으면 도서관 이용 못 해… 본인인증 ‘벽’ 막힌 디지털 소외계층

“내 이름으로 된 휴대전화가 없다고, 디지털 활용을 못한다고 책도 못 빌리다니, 서럽네요”

8살 손주를 둔 J씨(76)는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면서 손주와 함께 공공도서관을 두번이나 찾았지만, 책을 빌리지 못했다. 이유는 본인명의의 휴대폰이 없어 인증을 받을 수 없었고, 디지털 용어도 알아듣기 어려워 온라인 신청도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 코로나19가 한창 창궐할 때 수원의 P공공도서관을 찾았으나 사회적 거리두기로 도서관은 ‘무인 스마트도서관’과 ‘전자책 서비스’ 등만 운영하고 있었다, 이 두 시스템은 회원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회원증은 온라인으로 신청하거나 휴대폰 인증을 받아야 한다.

나이가 70세가 넘은 J씨에게는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요구사항이었다. 도서관의 책을 빌리는 것도 디지털 소외계층에게는 또다른 불편인 것이다.

결국 J씨는 도서관이 다시 정상 개관하는 지난 7일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같은 도서관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서관 내부에는 들어가지도 못한 채 안내데스크에서 머물렀어야 했다. 이 도서관은 회원에 한해서만 도서 대출을 하고 있어 주민등록증을 가져갔음에도 본인명의 휴대전화가 없는 J씨는 회원증을 만들 수 없어서다. 다른 인증 수단인 아이핀(IPINㆍ인터넷 개인식별번호) 역시 본인명의 휴대전화 없이는 온라인 인증서 발급이 안 됐다.

18일 경기도 내 일선 시ㆍ군 공공도서관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무인도서관만을 운영하던 상당수 공공도서관이 지난 6일부터 ‘생활 속 거리두기’ 전환으로 도서 대출에 한해서 부분 개방하고 있다. 수원시의 경우 도서대출 회원에 한해서 도서관 입장이 가능하며, 회원증 제시와 방명록을 작성하면 책을 빌릴 수 있다.

회원증이 없는 경우 본인명의 휴대전화를 가진 일반 성인은 문자 한 통이면 인증이 완료돼 손쉽게 회원가입이 가능하지만, 본인명의의 휴대전화가 없는 노인이나 아이들에게는 신분증이 있어도 장애물이 된다.

본인명의 휴대전화가 없는 노인이 책을 빌리기 위해서는 직접 구청ㆍ주민센터 등을 방문해 아이핀을 발급받은 후 도서관을 재방문해 본인 인증절차를 거치는 복잡한 방법 밖에 없다. 그나마 보호자가 있는 14세 미만 아동은 부모 명의 휴대전화 인증 후 아이 명의의 아이핀을 발급받아 회원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이같이 본인명의 휴대폰이 없는 노인이나 아이들이 책빌리기에 큰 불편을 겪는 것은 지난 2014년 개인정보보호법이 개정된 탓이다. 공공기관은 신분증 등을 통해 직접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게 불가능하도록 규제한 것이다.

현재 도내 31개 시ㆍ군 중 신분증으로만 회원증 발급이 가능하도록 가입절차를 개선한 곳은 파주시 뿐이고 나머지 지자체 공공도서관은 휴대전화를 통한 본인인증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송재술 한국도서관협회 정보소통위원장은 “지자체에서 가입 조건을 완화하는 등 선제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개선에 한계가 있다”며 “중앙정부에서 표준화된 지침을 내려줘 디지털 소외계층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해령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