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나문재와 협궤열차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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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문재는 바닷가에 서식하는 풀이다. 쥐똥나무의 아우뻘이다. 쌍떡잎식물로 명아주과에 속하고 한해살이다. 태어나고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 길어봤자 1년이다. 줄기는 엷은 녹색이다. 가을이면 붉게 바뀐다. 꽃도 핀다. 색깔은 녹황색이다. 잎겨드랑이에 1∼2개 달린다. 어린 잎은 먹을 수도 있다.

▶인적 드문 포구에선 유일하게 이방인을 반기는 식물이다. 겉모습은 영락없이 숫기없는 시골 총각을 닮았다. 도회지에선 존재감이 없지만, 해변에선 터줏대감이다. 가끔 허공을 향해 헛기침도 내지른다. 그런데도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열차는 섬 그늘을 끼고 느릿느릿 달렸다. 그 탈 것을 따라 나문재가 앉은뱅이처럼 앉아 있었다. 창가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면 종종걸음으로 비릿한 바닷바람이 쫓아왔었다. 철길 너비가 유난히 좁았다. 열차에 오르면 옆 사람과 어깨 부딪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수원 고색을 떠나 인천 송도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수인선이었고, 협궤열차였다.

▶소설 <협궤열차>는 나문재와 수인선이 나란히 등장한 작품이다. 윤후명 작가가 1992년 발표했다. 옛 연인이 찾아와 협궤열차를 타고 싶다고 말하면서 작품은 시작된다. 둘은 무작정 여행을 떠난다. 숱한 어촌 사람들의 삶과도 만난다. 그들은 일그러진 현실을 탓하지 않고 새벽이면 묵묵히 고깃배를 탔다. ▶수인선은 일제강점기가 남긴 유산이다. 일제가 우리의 소금을 빼앗아 가기 위해 만들었다. 1937년 8월 운행에 들어가 1995년 폐선 됐다. 오목, 어천, 야목, 빈정, 일리, 성두, 원곡…. 역 이름도 정겹다. 60여 년 동안 누군가의 등하굣길이었고, 가족과 친척을 만나러 가는 상봉의 길이었다.

▶수인선은 이처럼 오랜 세월 나문재와 협궤열차의 어울리지 않은 조합의 산물이었다. 그랬던 수인선이 폐선된 뒤 다시 부활한다. 강산이 두 번 바뀐 시간이었다. 지난 2012년 오이도와 송도 구간이 복선전철로 개통된 뒤 오는 9월 수원∼한대 앞 구간 개통을 앞두고 있다. 8년 만이다. 올가을이면 다시 수원에서 인천으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겠다. 창밖으로 옹기종기 앉아있는 나문재도 만날 수 있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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