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음악이어야 한다, 삶이어야 한다. 우리 영혼에 소중한 일들을 다시 찾아야 한다.”
마시모 자네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는 9일 베토벤의 최후 작품인 현악 사중주 16번에 적힌 ‘Muss es sein(그래야만 한다)’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코로나19로 모국인 이탈리아에 머물던 마시모 자네티가 경기아트센터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경기필 앤솔러지 시리즈 IV - 모차르트 & 베토벤 공연을 위해 지난달 말 입국했다. 예술이 잊힐 수밖에 없는 시기에 예술의 가치를, 음악으로 새로운 삶을 선사하겠다는 다짐도 함께다.
방역 지침에 따라 2주간 자가격리 중인 그는 이날 온라인 유튜브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얼마나 이 순간을 고대했는지 모른다”라며 “큰 희망과 기대를 하고 이곳에 왔다. 경기아트센터와 경기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지난 2월 24일 한국에서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탄 그는 지난 1월 베를린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반년 넘게 무대에 서지 못했다. 그 만의 일이 아니다. 극장이 모두 문을 닫았고 모든 콘서트와 활동이 중지됐다. 자네티는 “음악가, 성악가, 지휘자, 연주자들 모두 인생의 최악의 순간을 겪고 있다. 인간의 문화적인 면이 완전히 잊혔고, 이것이 나를 두렵게 한다. 예술의 가치가 잊힐까 봐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그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길을 찾고자 노력했다”며 “이탈리아에서 3일 내내 도서관에 틀어박혀 모든 악보를 찾아보며 오케스트라 규모를 줄일 방법을 연구했다”고 밝혔다. 경기아트센터와 경기필 직원 등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스카이프로 영상 회의도 진행해왔다. “모두가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길 바라지만,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아요. 그래서 준비해야만 하고, 저와 우리 경기필은 준비가 돼 있습니다.”
관객과 만나기 위해 경기필은 음악 콘셉트를 바꿨다.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필요한 말러 3번 대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슈트라우스의 13대의 관악기를 위한 세레나데, 베토벤 현악 사중주 16번 등 소규모로 오케스트라를 편성할 수 있는 레퍼토리로 변경했다. 2009년 스위스 취리히 게자 안다 콩쿠르에서 동양인으로 처음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이진상이 협연자로 나선다. 그는 “모든 콘서트에 다양한 세션을 둬서 현악ㆍ관악ㆍ목관ㆍ금관 악기, 퍼커션 등 다양한 그룹의 오케스트라를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택한 이유는 현시대에 대한 자네티의 메시지가 담겼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이다. 베토벤 현악 4중주 16번도 그가 생을 마감하기 5개월 전 완성한 곡이다. 두 곡 모두 죽음을 앞두고 탄생한 곡이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녹아있다. “세익스피어가 삶에 대해 얘기하길 ‘인생은 대비’라고 했어요. 지금도 자연과 우리 주변의 죽음이 완벽하게 대비를 이루는 시기이죠.”
마지막으로 그는 “거리 두기를 당연히 하면서 관객과 인사도 나누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오늘 이렇게 만나게 돼서 너무 감동적이다. 경기필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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