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떠나려는 당신, 열심히 일했나

박정임 미디어본부장 bakha@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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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도 휴식은 열심히 일한 사람의 몫이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출애굽기 20장 9~10절) 라는 구절을 보면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완성은 쉼이다. 너무 열심히 일한 나머지 지칠 대로 지친 노동자에게 휴가는 최상의 보상이다.

▶2002년 한 카드회사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문구가 유행했다. IMF를 이겨내고 경제 회복기에 접어든 때였다. 평소에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당당하게 휴가를 즐길 권리가 있다고 했다. 일에만 매달려 피곤한 삶을 살아야 했던 직장인들의 떠나고 싶은 욕망을 자극했다. 노동 후 놀 권리가 보장되기 시작했다. 최근엔 잘 쉬어야 일의 능률이 오르고 건강해진다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신조어)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휴가를 가라 마라 하는 시대가 아니다.

▶예년대로 라면 지금쯤 국민 대부분이 휴가 떠날 생각에 들떠 있어야 한다. 하지만 10명 중 6명은 올해 여름휴가를 가지 않거나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이달 6∼9일 6천150세대를 대상으로 모바일 설문조사를 한 결과다. 휴가를 간다는 응답자의 비율은 지난해보다 3.6% 포인트 감소한 37.8%였다. 휴가를 가지 않겠다거나 미정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62.2%에 달했다. 이유로는 ‘코로나19 때문’이라는 응답자가 75.6%를 차지했다. 이어 일정조율 필요(7.7%), 업무·학업·생업(5.1%), 휴가비용 부담(4.1%) 등의 순이었다.

▶휴가 분위기가 침체한 데는 코로나19가 직격탄이 됐다. 우선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일과 휴식의 구분이 사라졌다. 휴가일정은 자녀가 좌우하는데 학교는 개학과 방학 사이의 경계가 무너졌다. 사업장이 알아서 하라 했지만 방역 체계 유지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휴가 기간을 분산해 가라는 정부의 권고도 있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대세가 된 언택트(비대면) 열풍도 휴가철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차라리 ‘홈캉스’를 즐기겠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일년내내 휴가인 사람들이 많아진 탓도 있다.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근로자가 전체의 39%나 된다. 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을 하지 않거나 못한 청년층(15∼29세)이 올해 170만 명에 육박했다. 한 달에 30만 원에서 50만 원씩 청년 수당을 주는 지자체도 있다. 매달 개인에게 현금급여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제 도입도 공론화되고 있다.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 제도나 현금 살포로 편하게 살자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도처에 무위도식자들이 넘쳐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문구는 유물이 돼 가고 있다.

박정임 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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