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몇 개월만에 도로 지반 침하를 호소하는 주택 단지가 있다.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계곡 일대 한 곳이다. 모두 14채의 집을 지어 판매하는 소규모 개발현장이다. 산정상부 일부 주택은 완공됐고 매매도 됐다. 이곳에 최근 흉물스런 현수막이 나붙었다. ‘도로가 갈라지고 있다’ ‘(시공사는) 분양 중단하고 책임지라’ 등의 구호다. 최고 전망을 내세워 분양했고, 인기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되기까지 했던 곳이다.
주택 한 채 크기는 280㎡ 대지에 건축 연면적 140㎡(지하 1층ㆍ지상 3층)다. 산 정상부와 접해있다. 집 앞 도로는 산 중턱을 가로지른다. 도로가 산 허리를 지나고, 주택들은 그 위에 자리한 셈이다. 도로 이하 산 하단부는 나대지로 있다. 여기서 토사 등이 유출되고 도로와 주택 지반이 약화된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 경사도가 상당히 큰 산지였다.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처음부터 제기됐었다. 폭우가 겹치면서 주민 불안이 커졌다.
용인시는 민선 7기 들어 자연 훼손과의 전쟁 중이다. 산의 개발 허가 조건을 대폭 강화했다. 산림 훼손을 감시할 민관 위원회도 출범시켰다. 실제로 용인시 고기동 일대는 상당히 강화된 건축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산지 개발 부작용은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 거창한 전쟁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눈앞 위험 관리가 중요하다. 개발행위 허가에 문제는 없는지, 공사 안전은 지켜졌는지 살펴봐야 할 때다.
경기도에서 5년간 뭉개진 산지는 11만3천993㎡다. 여의도 면적의 40배가 넘는 크기다. 허가의 절반 가까운 44.4%가 집 짓는 용도로 나갔다. 도로 등 공용지분 확보가 쉽고, 대규모 개발의 절차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대부분이 소규모 주택 개발이다. 대개의 경우 산지를 깎거나 흙을 메워 조성한다. 자연히 지반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우기철이 다가오면 지반 침하, 산사태 공포가 상존한다.
2011년 7월27일 우면산 산사태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시 강수량이 하루 전(26일) 92.0㎜, 당일(27일) 241.5㎜였다. 이 사고로 16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다. 무리한 경사면 개발에 폭우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 참변이었다. 올해도 여름철 강수량이 예사롭지 않다. 1일 밤과 2일 새벽 사이에만 용인지역에 107.5㎜의 폭우가 내렸다. 전체 강우량 못지않게 위험한 게 집중 호우다. 이날 용인의 시간당 강우량이 40~50㎜다.
경기도가 산지 난개발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이런저런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중요한 행정적 의지다. 또 하나 병행돼야 할 게 있다. 폭우에 노출돼 있는 고(高) 위험 산지 택지 점검이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위험이 제기된 현장에만은 행정이 있어야 한다. 위험도를 점검하고, 대책도 일러줘야 한다. 필요하다면 긴급 대피 등의 명령도 내려야 한다. 우면산 참변 이후 무분별한 허가와 태만한 관리가 비판받았음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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