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재심을 청구한 윤씨(53)에게 31년 만에 사과했다. 그는 당시 윤씨를 불법 체포하고서 사흘간 잠을 재우지 않고 조사했으며, 윤씨의 진술을 듣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수사보고 등을 토대로 사실관계와는 동떨어진 내용의 조서를 조작한 의혹을 받는다.
11일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박정제) 심리로 열린 이 사건 재심 4차 공판에서 이춘재 8차 사건 담당 형사였던 A씨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싶다”며 “윤씨에게 죄송하다. 저로 인해서 이렇게 된 점에 대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3시간30분가량 이어진 증인신문 말미에 피고인석으로 몸을 돌려 윤씨를 향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사건 발생 이듬해인 1989년 7월 A씨가 용의 선상에 오른 윤씨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경찰서로 데려와 조사한 끝에 자백을 받아 구속시킨 지 31년 만의 일이다.
윤씨의 변호인인 박준영 변호사는 “윤씨는 소아마비 장애로 인해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며 “이 때문에 현장검증 당시 담을 넘어 피해자의 집으로 침입하는 등의 중요 행위를 재연하지 못했는데, A씨를 포함한 수사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윤씨의 자술서를 보면 맞춤법도 틀리고 문장도 맞지 않는다”며 “A씨는 이처럼 한글 능력이 떨어지는 윤씨에게 조서를 보여주고 서명 날인을 받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A씨는 “당시에는 과학적 증거(현장 체모에 대한 방사성동위원소 감정 결과)가 있어서 윤씨를 범인이라고 100% 확신했다”고 자신을 변론했다. 이어 A씨는 “자백을 받기 위해 잠을 재우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같은 조였던 형사 B씨(사망)가 사건 송치 후에야 ‘조사 당시 윤씨를 때렸다’고 말했었는데, 큰 사건을 해결했다는 공명심을 바라고 그랬던 거 같다”고 책임을 B씨에게 돌리는 듯한 증언도 했다.
이번 사건의 ‘진범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현장 체모 2점에 대한 감정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검찰은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통보받은 감정 결과를 이날 재판부에 증거로 신청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아직 법원에 공식적으로 감정 결과가 도달한 것은 아니다”라며 다음 기일에 결과를 공개하기로 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24일 열린다. 이 공판에서는 당시 형사계장 등 경찰관 2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이다.
양휘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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