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40분 등굣길’ 줄여달랬더니 軍 통행증 받으라고…“2020년 맞아?”

공군관사로 참고 사진. 독자 제공

“아이들 걸음으로 학교 가는 길에만 40분이 걸려 안전대책을 마련해 달랬더니 ‘군(軍) 통행증’ 받아 그냥 다니라네요.”

수원시 권선지구 주민들이 인근 고등학교와 지하철역을 도보로 빠르게 이용하기 위해 군으로부터 통행증까지 발급받는 등 시대에 역주행하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음에도 지자체는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등 개선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31일 공군 제10전투비행단(이하 군)에 따르면 군은 지난 2016년 2월 수원아이파크 1~9단지 입주자대표회의와 ‘공군 권선관사 통행로 개설에 관한 합의문’을 체결했다. 당시 수원아이파크시티 1~9단지에서 곡정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과 세류역을 지나는 직장인 등 일부가 도보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유로 군부지 내 통행로 사용을 요청하자, 군이 이를 조건부 허가한 것이다.

현재 아이파크 단지와 곡정고ㆍ세류역 사이에는 20만7천457㎡ 규모의 군부지(권선동 235번지)가 있다. 이 땅을 가로지르지 않으면 아파트에서 학교까지 도보로 30~50분, 지하철역까지 30~40분이 걸린다. 반면 군 부지 사이를 통행하면 소요 시간이 절반 이상 줄어든다.

하지만 부지 내 군 관사가 있는 데다 군사시설 특성상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되다 보니 양측은 ‘통행증 발급’을 절충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2019년 4월, 2020년 7월 2차례에 개정된 최종 합의문은 ▲통행 대상의 전 주민 확대는 불가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통행시간 운영 ▲자전거ㆍ오토바이 등 교통수단 없이 도보이용자에 한해 허용 등으로 축약된다.

이를 위해 곡정고는 매년 전교생을 대상으로 군 통행증 발급을 위한 학생 수요조사를 진행할 정도다. 곡정고 관계자는 “아이파크시티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걸어서 학교에 다니려면 통행증이 필요해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조사해 군에 전달한다”며 “학년별 10명 정도가 통행증을 받고 등하교 시간에 군 부지를 통행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이 수년 째 지속된 가운데 주민들은 통행증 없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마련되거나 대중교통 노선이 확충돼야 한다며 지난 27일 수원시의회를 찾기도 했다. 수원아이파크시티 입주자회 관계자는 “군 부지를 드나들면 군 입장에서도 예민할 수밖에 없다. 또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통행증을 받고 아이들이 학교를 다녀야 하느냐”며 “이제는 수원시가 대책을 찾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수원시는 군부지 특성상 지자체가 개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주민 민원이 들어오면 군에 의견을 전달할 수밖에 없다”며 “노선 신설 및 증차에 대해선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이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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