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의 파고가 심상찮다. 중국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잇따라 군사훈련을 감행하자 미국은 정찰기와 함정 등을 보냈다. 중국은 남중국해를 자신의 영해라고 하면서 이를 기정사실화하는 차원에서 훈련을 진행했다. 그러나 미국은 남중국해를 공해라고 규정하고 항행의 자유작전(FNO)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이런 구도는 20여 년 전에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넓힌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이 발효되면서 이미 예견되었다. 문제는 이런 구도가 점차 구조화되고 촘촘해지면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양국의 공군 조종사들이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했고 양국의 함정은 41m까지 근접하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연출되기도 했다.
양국의 군 최고지도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지난달 초에는 양국 국방부 장관이 90분간 전화 통화를 통해 우발적 군사충돌을 피하자고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말 전개된 현실은 달랐다. 중국은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쥐랑(巨浪·JL)-2A를 남중국해로 발사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군사훈련에서 처음으로 JL-2A를 발사함으로써 미국에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미국은 이 지역에 다시 고고도정찰기인 U-2기 등 공군기와 함정을 출동시켰다.
미국의 이런 대응을 트럼프식 대중국 대응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미국의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트럼프가 ‘중국 때리기’를 하고 있다는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만약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런 중국 때리기는 멈출 것이라는 낙관적 희망에 기반을 두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논리와 희망은 그야말로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중국의 부상에 미국은 경계를 넘어 초조함을 느끼고 있다. 2030년이 되기 전에 중국의 GDP가 미국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도 많다. 그래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적 견제에 대해선 공화당과 민주당이 따로 있을 수 없다.
통상 양국 간의 협력과 갈등은 동심원의 먼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문화와 스포츠를 거쳐 경제와 외교 단계를 지나 군사 단계에 이른다.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긴장은 양국 관계가 거의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는 전방위적이다. 관세율 인상, 중국의 제4차 산업 선도 기업에 대한 블랙리스트 지정, 중국 기업의 미 증시 상장 제한, 5G를 장악할 수 있는 하웨이 퇴출, 틱톡과 위쳇의 사용 금지와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경제번연네트워크(EPN)도 구축하고자 한다. 또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역내 국가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고 대만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면서 신장 및 티베트 지역의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군사 면에서 미국은 태평양 사령부를 인도 태평양 사령부로 변경하고 이 지역에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미국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양제츠 중국 정치국원의 방한이 없었어도 중국의 요구도 이미 나와 있다. 미국은 참여를, 중국은 불참을 요구한다. 일본은 철저히 미·일 동맹을 중시한다. 인도는 미국과 중국에 대해 이중 헤징전략을 추구한다. 분단된 현실과 북한의 핵보유를 고려해 본다면 중견국 한국이 일본이나 인도처럼 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외교의 원칙과 지향점을 수립하여 그 바탕 위에서 실리외교를 펼쳐 나가야 한다.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언명 속에 답이 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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