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여성성을 전복하고 여성의 무한한 가능성과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려는 전시가 찾아온다. 더욱이 이번 전시는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올해 2번째로 열리는 전시로 대면과 비대면 형태 모두를 염두에 두고 꾸려져 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사회에 활력을 전달할 전망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은 개관 5주년 기념전 <내 나니 여자라,>를 오는 11월29일까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연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이 지난 2015년 10월8일 개관한 이래로 지난 5년간 수원의 역사와 문화의 가치를 오늘을 위한 의미로 재해석해 온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내 의미가 깊다. 전시 제목은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비였던 혜경궁 홍씨의 자전적 회고록 <한중록>을 매개로 지어졌다. <한중록>에 따르면 혜경궁 홍씨가 태어나기 전 태몽은 검은 용이 등장하는 꿈이라 집안에서는 사내아이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에 반했기 때문에 ‘태어나보니 여자더라’라는 회한 섞인 대목이 여성이 처한 불합리와 불평등을 상징하게 됐다. 다만 문장부호 반점(,)에는 고정된 여성성에서 벗어나 여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드러내려는 의지가 함축됐다.
전시에는 13인(팀) 작가가 선보이는 회화, 설치, 미디어 등 총 48점 작품이 총 3부로 구성돼 숨겨지고 흩어진 여성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작품들은 저마다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의 존재와 정체성, 가능성을 재조명한다.
1부 <내 나니 여자라,>에서는 권력과 역사 속에서 비주류, 약자, 그림자로 인식돼 온 여성 존재를 재조명한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원류인 윤석남(81) 작가의 목조각 작품 <우리는 모계가족>(2018)은 우리 사회 속 고정관념인 부계 전통에 문제를 제기하고 여성 존재에게 개별성을 부여한다. 장혜홍(59) 작가는 올해가 혜경궁 홍씨 탄생 285주년인 점에 착안해 총 285개 패널로 구성된 작품 <黑-black project 2020>을 선보인다. 명주 위 검은색을 붓질 수천 번을 통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쌓아 올린다.
2부 <피를 울어 이리 기록하나,>는 여성들의 표현과 표출, 기록을 다룬다. 남성이 구축한 역사에서 여성의 언어와 경험은 대체로 공유되거나 전수되지 못했다. 이 섹션에서는 공유와 공감을 매개하는 여성적 표출을 살펴본다. 특히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최슬기(43)와 최성민(49)은 지난 1961년부터 오해까지 국내에서 출간된 <한중록> 13개 판본을 동시에 읽는 작업 <1961-2020>(2020)으로 눈길을 모은다. <한중록> 원문에서 여섯 문장을 발췌한 후 이 문장을 13권의 책에서 찾아 6개 페이지로 이어붙였다. 이를 통해 해석이 쌓여 공공의 기억이 되는 과정을 탐색한다.
3부 <나 아니면 또 누가,>에서는 여성의 사회, 정치 참여를 둘러싼 시각을 살펴보고 이로부터 촉발되는 여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와 함께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이분법을 뛰어 넘어 연대와 가능성을 모색한다. 제인 진 카이젠(40ㆍ덴마크)과 거스톤 손딘 퀑(38ㆍ미국)이 공동 제작한 <여자, 고아, 그리고 호랑이>(2010)는 사회 구조 아래 침묵하도록 강요받은 여성들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지촌 매춘부, 한국전쟁 이후 해외로 입양된 여성들의 진술로 구성된 다큐멘터리를 통해 개인의 트라우마와 역사의 간극을 들춘다.
전시 관람은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연장에 따라 8일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됐다.
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미술관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여성의 존재와 역사를 동시대 미술로 살펴보고 연대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오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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