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선(水仁線)은 일제가 물자를 수탈할 목적으로 1937년 개설했다. 인천의 소금과 경기도 곡창지대의 쌀을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철로다. 경동철도주식회사가 소유한 사설 철도로 개통 당시 인천~시흥~안산~수원 등지에 17개 역을 만들었다. 1995년까지 운행된 수인선은 표준궤도(1천435㎜)의 절반에 불과한 762㎜의 협궤열차로 ‘꼬마열차’라 불리기도 했다.
해방 이후 수인선은 수원, 인천 지역 주민들의 이동수단으로 여객 기능이 강화됐고, 인천 소래포구와 시흥 월곶 어시장 상인들과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했다. 그러나 자가용 보급과 수도권 지하철 개통으로 인한 이용객 감소, 소래철교의 안전성 문제 등으로 단계별로 구간이 철거됐다. 1973년 송도~수인역 구간 5.1㎞가 철거됐고, 1992년 소래~남동역 구간 5㎞가 폐선됐다. 이어 1994년 한양대~소래 간 운행이 멈췄고, 1995년 12월 31일 운행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수인선은 일제의 물자 수탈 수단으로 탄생했다는 아픈 역사를 가졌지만, 반세기 넘게 인천과 수원을 오가며 서민들의 발 노릇을 톡톡히 했다. 협궤열차는 맞은편 승객과 무릎이 닿을까 말까 할 정도로 작았지만, 시끌벅적 정이 넘쳤고 수많은 사연과 애환, 낭만을 싣고 달렸다. 윤후명의 ‘협궤열차에 대한 보고서’ 등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버스보다 작은 이 ‘꼬마열차’는 현재 인천 소래역사관 앞에 전시돼 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수인선이 다시 돌아왔다. 협궤열차 수인선이 폐선 된 지 25년 만에 광역철도로 재탄생했다. 수원역과 인천역을 잇는 수원~인천 복선전철 공사 구간 중 마지막 미개통 구간인 수원∼한대역이 12일 개통하면서 52.8㎞ 구간이 완전 개통됐다. 협궤철도를 표준궤도인 광역철도로 개량하는 수인선 사업엔 2조74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수인선은 수원, 시흥, 안산, 인천 등 수도권 서남부 도시 간 연결노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천~수원역 간 전철 이동 시간도 현재 90분에서 70분으로 20여분 단축됐다. 수인선은 분당선(수원~왕십리), 경원선(왕십리~청량리)과도 연결돼 교통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대한민국 철도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만한 일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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