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상징물이다. 수요집회 1천회를 맞은 2011년 12월14일 시민 성금으로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졌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 명예와 인권회복, 평화 지향의 마음을 담았다.
단발머리의 소녀는 의자 위에 손을 꼭 쥔 채 발꿈치를 살짝 든 맨발로 앉아 있다. 왼쪽 어깨에는 새가 앉아 있다. 옆에는 빈 의자가 놓여 있다. 단발머리는 부모와 고향으로부터의 단절을, 발꿈치 들린 맨발은 전쟁 후에도 정착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방황을 상징한다. 새는 세상을 떠난 피해자와 현실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빈 의자는 세상을 떠났거나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모든 피해자를 위한 자리다.
평화의 소녀상은 이후 전국 곳곳에 설치됐다. 형상이 모두 같지는 않다. 서있는 모습도 있고, 서울 성북동의 ‘한중 평화의 소녀상’처럼 중국인 소녀와 조선인 소녀가 함께한 것도 있다. 소녀상은 국외 10여곳에도 세워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있다.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을 시작으로 캐나다, 호주, 중국, 독일 등에 설치됐다.
해외에 소녀상 건립 때마다 어려움이 많았다. 2016년 미국 조지아주 브룩헤이븐 시립공원에 세워질 때는 일본 기업까지 나서 투자 철회 등 압박을 했고, 일본 극우세력은 시의원들에게 항의 전화를 퍼부었다. 버지니아주 소녀상은 2016년 워싱턴에 도착했지만 일본 방해로 장소를 못 찾아 창고에 갇혀있다 3년 만에 한인교포의 건물 앞에 설치됐다. 소녀상 건립에 일본의 반대와 훼방은 집요하다. 이에 2018년 필리핀 마닐라에 놓인 소녀상이 이틀 만에 철거된 사례도 있다.
독일 수도 베를린에 세워진 소녀상이 철거 위기에 내몰렸다. 지난달 28일 설치한 소녀상을 베를린 미테구(區)에서 허가 취소하고 14일까지 철거하라고 기습 통보했다.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독일 ‘코리아협의회’는 납득이 어렵다며, 법원에 효력집행정지 신청을 할 예정이다. 과거사에 대해 진정성 있는 반성을 한 국가로 알려진 독일에서 미테구의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의 철거 압박에 굴복한 것으로 보인다.
소녀상은 전쟁 성폭력과 식민주의를 기억하려는 기억운동의 상징이다. 베를린이 ‘자유와 인권을 위한 기억문화의 중심지’가 되려면 소녀상을 철거하면 안 된다. 세계 어느 곳보다 베를린 소녀상은 의미가 크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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