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차부둬(差不多) 선생이 중병에 걸렸다. 주민들은 의사 대신 수의사를 데려왔다. 그는 많이 아팠지만 “의사나 수의사나 같겠지”라고 생각했다. 수의사는 그를 소 다루듯 치료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는 것과 죽는 것 다 비슷하겠지”라며 숨졌다. 그가 죽은 후 사람들은 그를 모든 일에 달관한 군자라고 칭찬했다. 일일이 안 따져 덕이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명성은 먼 곳까지 전해졌다. 모두 ‘차부둬’가 됐다. 언어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때부터 중국인들은 뭘 물어도 “차부둬(差不多)”로 얼버무렸다. 관용어가 됐다. 결국 중국은 흐리멍덩한 나라가 됐다. 후스(胡適)의 단편소설 ‘差不多선생’은 이렇게 끝난다.
▶그는 루쉰(魯迅)과 함께 20세기 초반 중국을 이끌었다. 후스는 근대화를 자연과학적 시각으로 접근했다. 반면, 루쉰은 인문과학적으로 들여다봤다. 물론 두 사람이 없었다면 오늘의 중국은 없다. 후스는 중국이 뒤처진 이유를 자연과학이 서양에 밀렸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모든 일을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하는 중국인들을 비꼰 셈이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중국은 달라졌다. 작은 포구였던 웨이하이(威海)는 동양의 미항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도시들은 뉴욕의 맨해튼을 떠올릴 정도로 마천루들이 위용을 자랑한다. 그런데도 중국은 아직도 군밤과 군고구마를 파는 상인이 눈짐작으로 무게를 잰다. 차부둬 선생이 사라진 지 10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외신에 따르면 후스의 일기가 경매에서 238억원에 낙찰됐다. 그의 미국 유학시절인 1912∼1918년 쓴 18권 분량의 일기다.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경매에선 1억4천만위안(238억원 상당)에 낙찰됐다.
▶가장 비싼 일기로 기록됐다. 그의 일기에는 미국 생활 초기 술, 카드놀이, 극장 등 연예 활동에 몰두한 흔적이 남아 있어 기록으로서 가치도 충분하다. 일기를 통해 20세기 초반 중국 지식인들의 고민이 읽힌다. 한 자연인의 일기지만 중국이 외국과 소통한 증거이자 소중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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