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54ㆍ수원 영통)는 지난 1월 산책을 하던 중 함께 나선 반려견이 공원 계단에서 발을 접질리는 사고를 당했다. 곧장 반려견을 안고 수원의 한 동물병원을 찾은 A씨. ‘앞다리가 골절됐다’는 의사 소견에 따라 접합수술을 진행했지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을 절룩이는 등 반려견의 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8개월이 지난 뒤 찾아간 다른 동물병원에서 “이미 괴사가 진행돼 다리 90%를 절단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A씨는 “세상의 빛을 본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강아지인데 평생 장애견으로 살아가야 할 생각을 하니 너무 미안하다”며 “수술 이후 뼈가 제대로 붙지 않아 괴사가 진행됐다. 이는 명백한 의료과실”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A씨는 해당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통해 의료사고를 주장하며 진상 규명과 피해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반려동물 1천만 시대를 맞아 동물병원에 대한 피해상담 건수 역시 매년 수백여건에 달하지만 관련법 부재로 보상의 길이 막히면서 동물보호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3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동물병원 관련 피해 상담은 2016년 331건, 2017년 358건, 2018년 353건, 2019년 337건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동물병원 피해상담은 전국적으로 매년 수백여건에 이르고 있지만 의료사고가 의심되는 피해를 당하더라도 관련법이 없어 동물보호자들이 마땅한 보상이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실정이다.
동물이 민법상 유체물(공간을 차지하는 존재)로서 ‘물건’에 해당해 사람처럼 의료사고로 인한 처벌이나 보상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형법상 재물손괴 혐의를 적용하거나 또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지만, 보상금액 역시 ‘분양가 수준’으로 터무니없이 적어 실효성도 크게 떨어진다.
더구나 민사소송을 제기해도 현행 수의사법상 의료행위가 기록된 진료부의 제출 의무가 없어 보호자 입장에선 병원 측의 과실을 입증하기도 사실상 어려운 구조다.
상황이 이렇자 정치권과 관련 업계에선 동물보호자의 알권리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이 지난 7월 동물 진료기록부 발급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해 국회 심의를 앞두고 있고, 지난 9월 대한동물약국협회도 의료사고 분쟁의 원인으로 “진료기록부 열람 문제”를 꼽으며 의무화 시행을 촉구하기도 했다.
동물권단체 케어 김영환 대표는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동물을 물건이 아닌 또 하나의 생명체로서 존중하며 관련법을 제정하고 동물보호에 앞장서고 있다”면서 “반려동물이 우리의 삶 일부가 된 현 시점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본보는 A씨 주장과 관련 해당 병원측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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