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이 파락호 시절 충북 괴산에 있는 화양서원을 찾았다. 화양서원은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을 제향하는 서원으로서 당시 위세가 당당했다. 그곳의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군대를 파견해 우리나라를 도운 명나라 황제의 위패까지 모시고 있어 더욱 성역시했다.
서원을 오르는 돌계단이 있는데 계단이 가팔라져 있어 오를 때에는 누구나 머리를 숙이고 올라가야 한다. 일부러 권위를 위해 허리를 굽혀 오르게 한 것이다. 그런데 대원군이 이 계단을 오르면서 고개를 빳빳이 세웠으니 사람들이 놀라운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더욱 대원군의 옷차림이 파락호 시절이니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마침내 서원 경비원이 달려와서 ‘여기가 어느 곳이라고 올라오느냐?’라고 고함을 지르며 대원군의 발을 걷어찼다. 대원군은 그 자리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대원군으로서는 말할 수 없는 수모였다. 대원군도 걷어차는 화양서원은 노론의 집권,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속에서 그렇게 막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그 세력권에 있는 사람들은 권력의 맛을 즐기고 있었다. 심지어 화양서원에는 이곳을 찾는 유생들을 위해 ‘복주촌(福酒村)’이라는 것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떤 범법자도 이곳에 숨어들면 관에서 손을 쓸 수 없는 불가침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집수리 명목으로 세도가들이나 지방 관속들로부터 경비를 뜯어내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다 1863년 마침내 대원군은 아들 고종의 왕위 계승과 함께 대권을 잡게 됐다.
대원군이 권력을 잡자 제일 먼저 한 것은 서원철폐였다. 자신을 계단에 오르지도 못하게 걷어차 수모를 준 화양서원이 제1호였다. 전국에서 47곳만 그대로 두고 모든 서원이 철폐되었는데 그 당시 화양서원은 그 위세로 보아 당당히 존치될 줄 알았었지만, 대원군은 그 예상을 깨뜨려 버렸다. 대신들은 물론 전국이 깜짝 놀라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대원군은 그 순간 권력의 맛을 흠씬 느꼈을 것이다.
한동훈 검사장은 재벌 총수들은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을 구속하는 등 수사 검사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때는 조국 전 법무장관 등 살아있는 권력에도 서슴없이 칼을 빼들었다. 그가 쥐는 칼은 법의 이름으로 주어진 것이 어서 누구도 제지를 가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손에서 칼을 뺏는 또 하나의 권력이 있었다. 법무부 장관의 인사권이 그것이다.
지난 1월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밀려났고, 그것도 모자라 지난 6월에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을 받아 경기도 용인에 있는 연구원 분원에 근무해야 했다. 그런데 다시 지난 10월14일부터는 충북 진천에 있는 본원에 근무하라는 명을 받았다.
올해 세 차례나 보따리를 싸야 하는 그의 심정을 짐작할 만하다. 또한 보도에 의하면 법무부 감찰관실은 그에 대한 ‘복무점검’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출퇴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연구 업무는 성실하게 임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복무 점검’이다.
우리 속담에 ‘쇠가 쇠를 먹는다’는 말이 있다. 쇠(鐵)가 그렇게 강하고 단단해도 역시 그것도 용광로의 끓는 쇠에는 당할 수밖에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권력은 허무한 것이 아닐까? ‘권력은 게임’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겼는지 모른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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