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중 인민군이 저지른 파주시 파평면 ‘두포리 학살사건’의 실상이 지난해 본보에 의해 69년 만에 공개됐다. 두포리 학살사건은 1950년 10월2일 유엔군의 서울 수복 이후 북으로 퇴각하던 인민군들이 끌고 가던 경찰, 공무원, 대한청년단원 등 우익인사들을 파주 임진강 전진대교옆 산중턱에서 학살한 사건으로 97명이 살해됐다. 당시 목격자와 유가족 증언이 담긴 구술자료만 있었는데 김현국 향토연구가가 영상 기록을 발굴해 본보에 공개, 그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공개된 6분11초 분량의 흑백 동영상 필름에는 처참했던 두포리 학살 장면이 나온다. 학살 현장에서 코를 막고 오열하며 가족을 찾는 유가족과 처참하게 희생돼 널부러진 시신들, 인민군의 총살이 시작될 때 팔에 총알을 맞고 죽은 척해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의 증언를 청취하는 영연방 군인들 모습이 담겨 있다.
지난 1986년 파평면 두포리 산 36에 ‘반공투사 위령비’가 세워졌다. 비석에는 96명의 희생자가 새겨져 있다. 문산, 금촌, 교하 등 지역명 밑에 이름이 있다. 비석 밑쪽과 옆 면 등에도 추가 표기한 이름이 18명 있다. 희생된 사람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정확한 희생자 조사 기록조차 없다.
올해 10월 5일 위령비 앞에서 첫 공식행사로 ‘6ㆍ25전쟁 시 북한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추모제’를 열어 고인들의 넋을 위로했다. 최종환 파주시장은 “북한군의 만행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피해자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를 전한다”며 “유족의 아픔을 보듬고 삶과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국가 책무다. 파주시 차원의 제도적 장치 마련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두포리 학살 사건은 반세기 넘도록 진상 조사가 없었다. 2008년이 돼서야 정부 주도로 발굴이 이뤄졌다. 이후 제1기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경기도 북부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피해사건’을 조사했는데, 상당수 희생자가 1952년 공보처 통계국이 작성한 ‘6ㆍ25전쟁 피살자명부’에서 누락된 것으로 밝혀졌다. 과거사위는 두포리 학살외에 천현면(현재 법원읍) 동문리에서 천현면장이던 L씨(당시 53세) 등 일가족 4명이 지방 좌익세력에게 총살당한 것을 밝혀냈다. 동문리, 두포리 등의 희생자가 피살자 명부에서 빠지면서 호적이 멸실되기도 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희생자가 아직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다시 공식활동을 하게 될 2기 과거사정리위에서 그동안 미흡했던 점을 집중 조사하는 등 진실규명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억울한 희생 사례를 발굴하고 그들의 원혼을 추모해야 하는게 국가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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