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한 장 남은 달력 앞에서

정자연 문화부 차장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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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이면 내년도 달력을 한 움큼씩 짊어지고 왔다. 출입처마다 각양각색인 달력을 받는 재미가 쏠쏠했다. 달력을 받으면 바빴다. 큼지막하게 동그라미 치며 주요 일정을 새겼다. 양가 어르신들의 생일을 내년도 양ㆍ음력 날짜에 맞춰 옮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올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맞이하는 혼자만의 의식이었다.

▶그런 ‘공짜달력’이 올해는 귀하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홍보용 달력을 제작하는 회사들이 매년 줄어든 탓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더욱 줄어들었나 보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위해 달력을 제작하지 않은 곳도 있다. 삼성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유니세프 등 청소년 교육 및 아동보호 사업을 수행하는 비정부기구(NGO) 9곳의 달력 30만 개를 사들여 임직원에게 나눠줬다. 달력을 자체 제작하지 않고, 사들임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의식을 알렸다.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며 ‘올해 대체 뭘 했나’ 하는 회한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미완의 일들이 쏟아져 나온다.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낼’ 2020년이기에 그렇다. 끝을 모르는 코로나19 확산 속 맞이하는 첫 겨울이다. 약속으로 빈칸을 찾기 어려웠을 12월 달력도 휑하다. 만남이 자제되고 거리를 둬야 하는 이 겨울이, 누군가에게는 더욱 혹독할 것이다. 온정의 손길을 독려하는 기사가 연말이면 쏟아져나오지만, 올해는 더 절박하게 들린다.

▶언론계 한 선배가 제안했다. 회한은 잠시 접어두고, 이제라도 주변을 살펴보자는 거다. 이 도시, 이 동네, 이 거리에 있으나 잘 보이지 않았던 누군가를 위해 지금 꼭 해야 할 일들이 분명히 있을 거란다. 기사든 기부든 1인 자원봉사든 캠페인 참여든 뭐든 해보자 했다. 맞다. 끝을 모르는 혹한 속에도 봄은 오고 꽃은 반드시 핀다. 그때까지 이들이 버틸 수 있는 위로와 보살핌이 필요하다.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미완으로만 보내기엔 할 일이 많은 요즘이다.

정자연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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