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로 취약계층 인권침해” 피해자들 인권위에 진정서

▲ 기사와 관련 없음. 경기일보DB

“인권 침해는 단순히 누군가를 때리고 괴롭히는 것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1. 인천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설노동자 A씨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날씨부터 확인한다. 지난 2018년 폭염 당시 동료가 더위에 쓰러졌을 때, 작업을 지속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듣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서다. ‘밭을 매는 소도 그렇게는 일하지 않는다’던 A씨에게 여름은 두려운 계절이다. 그는 “정부는 작업중단 권고 정도만 하며 책임을 회피한다. 사람이 죽어도 자연재해 천재지변이라는 추악한 변명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침해한다”며 “자연이 만든 위기에 노동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고 토로했다.

#2. 경북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 B씨는 올 초 꽃이 필 시기에 영하를 기록했던 기상이변 탓에 열매의 꽃을 맺히질 못했다. 시간이 흘러 상황이 괜찮아질 법하니 52일간의 장마가, 3개의 태풍이 이어졌다. 결국 1년 농사를 망쳤다는 B씨는 다른 지역은 괜찮을까 싶어 전북, 충남 등 전국 농가를 살폈지만 어딜 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B씨는 “과수농사, 벼농사 등 지역을 불문하고 모두가 어렵다”며 “농산물 수입 개방 이후로 해마다 소득이 줄어 힘들어했던 농민들이 이제는 기후 위기까지 덮쳐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기후 변화로 인권을 침해당했다는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다산인권센터 등 6개 단체로 구성된 기후위기인권그룹은 농축산 종사자 21명, 어업 종사자 2명, 노동자 5명, 해수면 상승지역 거주민ㆍ일반 소비자 2명, 기후 우울증 등 건강 관련 피해자 7명, 청소년 4명 등이 참여한 진정서를 지난 16일 인권위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진정서에서 피진정인을 ‘대한민국 정부’로 적시하면서 “피진정인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소극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이행하는 일에 방만하게 대응했고, 진정인들에게 현실로 다가온 구체적인 피해를 대비하거나 완화하는 데 있어 미흡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기후위기인권그룹은 ▲산불ㆍ폭우ㆍ가뭄ㆍ태풍 등 재난 피해자 ▲폭염ㆍ한파에도 야외노동을 하는 노동자 ▲쪽방촌ㆍ고시원 거주자 ▲이상기후ㆍ생태계 변화로 생산량 감소를 겪는 농ㆍ어민 등 기후 변화로 인한 취약계층이 존재한다고 봤다. 이에 지난 11월 26일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증언대회’를 개최해 사례를 수집한 바 있다. 그 결과 30여건의 사례가 모였다.

대표 진정인으로 나선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단순하게 올 한해 기후가 이렇다저렇다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이 피해에 따른 법적인 보호와 아울러 기후위기를 어떻게 모면할 것인가에 대한 정부의 중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나 정부가 기후위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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