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방향 튼 尹의 칼자루
공수처장 역시 냉엄한 자리
청렴한 정권만이 안전 보장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편지를 보냈다. 수신자는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들이다. 공수처장 임명에 협조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야당 원내대표의 편지니 내용이야 뻔하다. 예상대로 표현 하나하나가 독하다. “살아 있는 권력을 견제하기는커녕, 살아 있는 권력의 사냥개가 될 것이다.” “(공수처 출범에 동의해 준다면)모두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렇게 단정하고 있다. ‘공수처는 정권 편.’
여권의 밀어붙이기도 거침이 없다. 12월 초 대통령이 워딩으로 다그쳤다. “2021년 새해 벽두에는 공수처가 정식으로 출범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이낙연 대표가 이어받았다. “공수처 설치는 시민사회 요구로 공론화된 후 24년을 끌어온 오랜 숙원이었다.” 그 후 일사천리다. 어제 공수처장이 지명됐다.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이다. 여야 갈등도 이제 끝물에 온 듯하다. 여권이 개운해한다. 편해 보이기도 하다.
이런 말이 있었다. “전에는 저에게 안 그러셨잖습니까.” 윤석열 검찰총장이 국감에서 한 말이다. 그랬었다. 1년여 전. 국민의힘은 그를 반대했다. 정권 앞잡이라고 몰아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은 찬성했다. 더없이 참다운 검사라고 두둔했다. 이제 거꾸로 됐다. 국민의힘은 ‘참다운 검사 윤석열’로 칭송한다. 민주당은 ‘못 된 정치 검사 윤석열’로 비난한다. 여야 모두가 들을 말이다. 모두 전에는 윤 총장에게 안 그랬었잖나.
여권은 이렇게 욕한다. 윤석열은 배신자다. 뒤통수친 사람이다. 조국 수사가 발단이었다. 배은망덕한 과잉 수사라 했다. 울산 시장 선거 개입 의혹도 뒤졌다. 대통령 측근을 향한 예의 없는 수사라 했다. 원전 감사 방해 사건도 수사했다. 대통령 통치 행위를 겨눈 월권 수사라 했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밀어붙인다. 당연히 해야 할 수사라고 한다. 쏟아지는 욕에 대하는 답은 하나다. ‘헌법 정신에 따라 충실히 수사할 뿐이다.’
헌법 정신…. 공교롭다. 김진욱 지명자는 헌법재판소 출신이다. 헌법이 업무였다. 이 연결어(語)로 궁금증이 생긴다. 김 지명자의 헌법과 윤 총장의 헌법은 다를까. 더 솔직하게 풀면 이거다. 김 지명자도 윤 총장처럼 여권 뒤통수를 칠 것인가. 이를 점쳐 볼 재료란 게 별로 없다.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특검팀 경력도 책임자는 아니었다. 딱히 주목될 결과도 없었다. 그래서 더 남는 게 ‘김진욱 헌법’과 ‘윤석열 헌법’이다.
‘윤석열 헌법’은 ‘윤석열 현상’을 낳았다. 임기의 준엄함을 일깨웠다. 권력 눈치 안 봐도 된다는 학습이다. 수사의 엄정함도 확인했다. 수사 기관은 수사로 말한다는 학습이다. 여기에 여론의 공식도 경험했다. 수사 밀어붙이면 대권 후보 된다는 학습이다. 옳든 그르든 이 모든 게 윤석열 현상이다. 임기에 떳떳하고, 권력에 당당해도 버틸 수 있다는 교훈이다. 검찰 상당수가 이 현상을 지지한다. 국민 과반수도 잘한다고 한다.
공수처장도 수사기관 책임자다. 검찰 총장과 다를 거 없다. 임기에 떳떳해질 수 있다. 3년 임기가 온전히 남았다. 정권의 자투리 임기에 연연할 필요 없다. 공수처 구성원도 검사다. 검찰 소속 검사와 다를 것 없다. 정권에 당당해질 수 있다. 수사로 말하면 된다. 서산 언저리 정권에 기웃거릴 필요 없다. 어쩌면 당연한 자세다. 윤석열 현상이 이걸 확인했을 뿐이다. 공수처가 갈 길이 이와 달라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공수처는 권력의 앞잡이가 아니다. 국민의힘도 그만해야 한다. 공수처는 정권의 안전판이 아니다. 정부 여당도 기대 말아야 한다. ‘김진욱도 제2의 윤석열이 될까.’ 이 우매한 질문을 풀 간단한 답은 정권에 있다. 바로 국민이 이 정권에 매길 청렴도 점수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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