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2020년 잘 가시오

2020년 12월의 마지막 날, 마치 육지 끝에서 시작되는 바다를 보는 기분이다. 수심을 알 수 없는 바다를 향해 잠시 멈추어 서서 숨 고르며 세워보는 촉각, 결코 만만치 않은 경자년 흰 쥐의 해가 비대면으로 스쳐간다. 한 생을 통해 두 번 일어나서는 안 될 이 엄격한 코로나바이러스 그리고 거짓이 참을 밟고 짓누르며 억지 부리는 무서운 뉴스가 난무한 채로 한 해가 저물고 있음이다.

그녀는 말했다. 우리가 이 길을 몇 번이나 더 걸을 수 있을까. 한 열 번은 되려나 하며 쓸쓸히 웃던 그녀를 90년 봄 봉녕사 심우불교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동갑임에도 나에게 언니처럼 때론 스승처럼 한결같이 보살펴 준 친구다. 차가 절집까지 들어가지 않는 깊은 고찰에 공양주로 들어가 살면서 어쩌다 늦가을 바람처럼 마을로 내려와 그간의 이야기 봇짐을 풀어놓는다. 그러던 친구 겨우 두 해 걷더니 아침저녁 예불소리 그리워 절집 아래 수목장으로 육신을 뉘었다.

오늘 아침 잎 진 공원 길을 걸으며 나직하게 그 친구를 불러보았다. 그녀는 어김없이 시작한다. 친구야 봐라, 한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진 이 낙엽들 자세히 봐봐. 똑같은 크기의 이파리 없고 이파리마다 색깔은 똑같은지 모양은 마르면서 오므리고 비틀기를 하나같이 달리하잖니. 움트고 잎 되어 제 용량만큼 살다가 이리 달리 몸 바꾸는데 뭐가 우울하다는 거야. 넌 지금 잘하고 있어 지금처럼 그냥 쭉 가는 거야. 그녀는 언제나처럼 토닥였다.

50년 전 방송통신대학이 생기고 20년 전 디지털대학이 생겨날 때 비대면 수업은 어쨌거나 낯설었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등교하고자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야 하고 선생님의 두 눈동자를 좇아 웃거나 끄덕이며 종일 선생님의 발걸음, 목소리 강약에 따라 집중하며 얼마나 많은 의사(意思)를 우리는 현장에서 주고받았는가.

2020년은 우리에게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게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하고 가까운 지인일수록 경계하고 의심하여 밥 한 끼도 마음 풀고 나누기가 조심스러운 일상이 되었으니 그 나머지를 말로써 어찌 다 열거할 수 있겠는가.

모든 수업은 비대면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고 특히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 의례, 문화예술에는 백문이 불여일견임에야 틀림없음에도 불편함 감수하고 더욱 면밀하게 기획하고 연구하여 진행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얼마 전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가 지났다. 동지가 지나면 하루에 여우꼬리만큼씩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점차 양의 기운이 생겨난다고 하여 새해로 친다. 그렇지만, 양력 1월은 음력으로 섣달이어서 눈이 많이 내리고 강한 겨울바람과 혹독한 추위의 소한과 대한이 들어 있다. 지상의 모든 열기는 땅속으로 하강하는 시기이다.

수심을 알 수 없는 바다 깊숙이 온갖 생물이 겨울을 살아내듯 언 땅 깊이 웅크려서 뿌리 내린 기운을 다시 이파리로 밀어올리는 신축년 봄을 우리는 미리 잉태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렇다. 그러므로 2020년은 잘 가시게.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