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선언 속 ‘자본가 타도’
기업인 재난 가해 집단 취급
양형委 노동부 의견만 수렴
“한 마디로 말해서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및 정치적인 환상으로 가려진 착취를 노골적이며 파렴치하고 야수같은 착취와 바꿔 놓은 것이다.” 칼 마르크스가 말했다. 공산당 선언(1848년)에서다. 부르주아지에 대한 분노가 이글거린다. 노골적인 착취 집단, 파렴치한 착취 집단, 야수 같은 착취 집단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서가 그대로 결론으로 이어진다. ‘자본가 타도!’, ‘생산 수단 몰수!’. 벌써 30년 전에 묻힌 고서(古書)다.
그제, 대법원 양형위원회 의결이 있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양형을 손봤다. 강화된 형량이 살벌하다. 원래 징역 10월~3년6개월이었다. 이걸 징역 2년~5년으로 바꿨다. 다수범ㆍ재범은 더 무시무시하다. 징역 3년~10년6개월까지 높여 놨다. 원래 징역 10개월~7년10개월 15일이었다. 감경인자에서는 공탁도 뺐다. 공탁하면 감형 받던 길을 막은 것이다. 양형위(委)가 이만큼 관심 끈 적 있었나. ‘징역 10년’의 중압감이 그만큼 크다.
절차는 남아 있다. 반대 의견을 듣는다. 공청회도 열어야 한다. 3월29일 전체 의결도 남았다. 하지만, 변수는 없을 것 같다. 징역 10년이 과하다고 누가 나설 분위기가 아니다. 그랬다간 봉변당하기 십상이다. 강제 사항은 아니다. 법적 의미는 권고다. 단지 현실이 만만하지 않다. 기준 형량을 벗어나면 그 사유를 판결에 써야 한다. 90% 이상이 양형기준을 따르는 이유다. 4월 되면 산재로 징역 가는 기업인이 줄 설 것으로 보인다.
노사(勞使)는 동반자다. 산업 현장의 두 축이다. 균형을 이뤄야 한다. 오랜 기간 그게 깨졌다. 산업화 시대였다. 노동자 탄압 시대였다. 민주화 이후 달라졌다. 노동자 권리가 올라왔다. 기업주 권한은 내려갔다. 얼추 중간에서 만났다. 균형이란 기울어짐 없음을 뜻한다. 노동자로 기울어도 안된다. 징역 10년6개월도 그래서 걱정이다. 기업에 불리하고 가혹하다. 일본은 징역 6개월이다. 영국 2년 이하 금고, 미국 징역 6개월이다.
우리보다 처벌 형량이 낮다. 그렇다고 재해가 들끓지 않는다. 말만으로도 공포스런 ‘10년6개월’, 이 공포가 담보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기업에 대한 협박뿐이다. “회사 망하게 할 수 있다”는 으름장뿐이다. 이런데도 산업계는 조용하다. 노동으로 기운 사회를 눈치채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입장문을 냈다. “선의의 기업들이 과도한 처벌을 받지 않도록 합리적인 양형 기준을 마련해달라.” 이게 할 말의 전부는 아닐 거다.
양형위원장은 김영란씨다. -지난해 6월, 노동부 장관을 만났다. 장관이 찾아왔다. 부탁을 했다. 산안법 양형을 강화해달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그러마하고 답했다.- 전부 언론에 보도된 얘기다. 6개월여만에 부탁대로 했다. 화끈하게 높였다. 처벌의 당사자는 기업인이다. 이들을 대표하는 목소리가 있다. 들을 거면 그것도 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한쪽만 들었다. 그런 것 같다. 공정의 상징이라더니, 별로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박 사장’은 망했다. 근로자 산재로 망했다. 2000년, 과천에서 도로 공사를 했다. 벽면이 무너졌다. 인부 1명이 숨졌다. 꼭 1주일 뒤 축대가 무너졌다. 인부 한 명이 또 숨졌다. 박 사장은 구속됐다. 2억원의 보상비를 줬다. 풀려났지만 사업은 엉망됐다. 가정까지 무너졌다. 지금은 타인 명의로 중장비 몬다. 산업 재해가 그렇다. 제일 먼저 기업인을 죽인다. 어떤 정신 나간 기업인이 이런 산재에 나태하겠나. 우범집단 취급하면 안된다.
1872년 마르크스가 서문(序文)을 썼다. “‘선언’은 역사적인 기록문서이며 우리에게는 이제 그것에 변경을 가할 권리가 없다.” 고민도 적었다. “(공산당선언이) 실천상으로는 (이미)시대에 뒤져 있다.” 출판 24년 만에 시대에 뒤짐을 걱정한 선언이다. 그 후 백 년도 안 돼 실패한 이념으로 정리된 선언이다. 이상한 일이다. 그 철지난 선언 속 ‘자본가 타도’가 난데없는 생명력을 발휘하며 어느 작은 나라의 기업인을 달달 볶아대고 있질 않나.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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