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야당의 딜레마?

어느 고등학교 3학년 졸업반에서 졸업을 앞두고 선생님들에 대해 인기투표를 했다. 물론 학교 측에는 비밀로 한 학생들의 장난스런 이벤트였다. 학생들의 관심은 A교사와 B교사. A교사는 교회 장로에 실력도 겸비한 그야말로 실력파로 인정받았고, B교사는 수학여행 때 학생들이 숨어서 맥주파티 한 것을 보고도 모르는 척 눈 감아 줄 만큼 뱃심(?) 있는 교사였으나, 실력이 조금 모자라는 평을 받았다. 학생들은 엄격한 교회 장로이고 실력 있는 A교사가 가장 많은 표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여론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여론을 뒤엎고 B교사가 단연 1등을 차지했다. 존경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별개였던 것이다. ‘하지마라’, ‘그러면 안 된다’며 늘 따지듯 엄격한 A교사 보다 실력은 조금 모자라도 학생들에게 인간적인 B교사가 친근함을 느꼈던 것 아닐까?

요즘 야당 처지를 보면 앞에서 이야기한 A교사가 생각난다. 서울시장이나 부산시장 모두 승리할 것처럼 분위기가 감돌았으나 지금은 상황이 쫓기는 감마저 느낀다. 사실 서울, 부산 모두 여당출신 시장들의 성추문으로 발단된 선거여서 도덕적, 윤리적으로 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선거가 내년 대통령선거의 교두보라는 것에서 야당은 고무됐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민생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정치 환경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가령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자영업 손실 보상법’ 추진 등을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며 시비를 따지고 있지만 그 이상 어쩌지를 못하는 것이 야당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국가혁명당 허경영 서울시장 후보처럼 가공할 공약을 쏟아 낼 수도 없는 처지다. 허경영씨는 연애 공영제, 결혼 공영제, 출생 공영제를 시행해 미혼 남녀에게 매월 20만원씩 연애수당을, 결혼을 하면 1억원, 아이를 낳으면 5천만원을 주겠다고 공약을 한 것. 이런 파격적인 공약이 어쨌거나 화젯거리라도 되지만 야당으로서는 포퓰리즘을 걱정 할 뿐 국민들 마음에 와 닿을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코로나로 멍든 영세 상인들이 절실히 원하는 보상 법안들을 반대하자니 표를 잃을 것이 자명한데 참으로 난처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안에 찬성하자니 그 성과는 민주당이 차지하는 것이어서 빛을 발할 수 없다. 그래서 코로나 때문에 민주당이 덕을 보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부산의 쟁점이 되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도 그렇다. 부산시장 민주당 예비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가덕도 신공항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낙연 대표는 예비후보들과 함께 가덕도 현장을 방문해 지금이라도 당장 공항건설이 시작될 것 같은 이벤트도 연출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가덕도 공항 하나에 부산 경제가 확 달라지지 않는다”고 한 것은 야당 후보들에게는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은 역효과를 냈다. 사실 가덕도 신공항 하나에 부산 경제가 확 달라질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부산지역으로서는 큰 이슈가 되고 있고 계속 기대감을 부풀게 하고 있는데 꼭 그런 표현을 이 시점에서 해야 했을까? 물론 국민의 힘 입장에서는 정치적 기반이 되는 TK(대구·경북)의 여론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래저래 야당의 딜레마이다. 거기에다 부산시장 예비후보들 간에 내분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럴 때는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특출한 전략으로 조조의 대군을 무찌른 제갈공명 같은 인물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이 딜레마를 헤쳐나 갈 인물이 있는지 모르겠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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