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새해를 며칠 앞둔 늦은 밤. “제가 세상을 떠난 후 저희 가족을 제발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합니다”라는 연락이 왔다.
3년 전 용인지역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했던 J씨가 보낸 메시지다. 갑작스런 상황에 위험 신호인지 아닌지 판단이 안 서 정확히 10분만 고민하기로 했다.
그 사이 노트북에 저장한 자료, 휴대전화에 남은 기록 등을 뒤적였다. 유일하게 남은 건 J씨의 진단서와 신체 사진이었는데 그걸 보자마자 경찰에 신고를 결심했다.
이후 J씨가 생을 부지(扶支)했단 이야기를 듣고 마음의 짐을 덜게 된 줄 알았으나, 며칠 뒤 부고(訃告)를 받게 되면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짐이 온몸에 얹혔다.
다음날 ‘마지막 당부’대로 J씨의 가족을 만나러 갔다. 주변에 알려지는 게 두려워서, 어린 자녀들에게도 당분간 감추고 싶어서 용인에서 400㎞ 떨어진 곳에 J씨의 안식처를 정했다고 했다.
유족들은 번갈아가며 생전 J씨의 억울하고 분통한, 서글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무력감만 커졌다. 아무것도 도울 길이 없단 생각에서다.
무작정 ‘묻지마 범죄’에 대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정식 명칭과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아 처벌은 제각각 이뤄지고 있었다. 앞으로도 이 범죄에 대한 그 어떠한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 모르는 이에게 범죄를 당해도 ‘가중처벌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통념 말고는 가해자를 제도적으로 압박할 수단이 없는 실정이다.
J씨 외에도 이미 묻지마 범죄를 당한 다른 피해자들, 또 앞으로 묻지마 범죄를 당할 수 있는 예비 피해자들을 위해 사회적 인식이 보다 더 개선되길 바란다. 가해자를 엄중히 대하고 피해자를 살뜰히 지원하는 방안이 모색됐으면 한다. 다시 한번 J씨에게 깊은 조의를 표한다.
이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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