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문제가 급기야 국무회의에까지 올랐다. 정세균 총리가 23일 학교폭력 이력을 국가대표 선수 기준에 포함하라고 지시했다. 여자배구 이재영ㆍ다영 자매로 불거진 학교 폭력이 국무회의에서 논의된 것은 처음이다. 국무총리가 이 문제와 관련된 지시를 부처에 내린 것도 처음이다. 그만큼 학폭 문제가 사회 전반에 파장을 주고 있음이 확인된다. 학폭 근절에 대한 정부 의지를 보여줬다고 본다. 적절했다. 환영한다.
걱정은 작금의 전개 과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운동부 폭력은 있어 왔다. 인정됐다기보다는 묵인됐다는 측면이 강했다. 성적 지상주의와 경직된 위계질서, 폐쇄적인 훈련 환경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오죽하면 국무총리도 국무회의 석상에서 이 점을 인정했다.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학교폭력을 정당화하는 것과 다른 문제다. 폭력이 있었던 현실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현실에 맞는 비난과 책임 추궁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처벌의 기준이 될 사실 확인을 어떻게 할 것이냐다. 학창 시절 폭력은 상당 부분이 공소시효를 지났다. 처벌 근거가 없다. 고소가 아닌 폭로의 형식을 띄우고 있다. 수사 근거도 없다. 폭력 당시 상황에 대한 현장 조사가 어렵다. 수사의 현실적 한계다. 지금까지 날만 새면 새로운 학폭이 폭로됐다. 강제 조사로 확인한 게 단 한 건이라도 있나. 이런 상황에서 무슨 근거로 선수 자격을 박탈하나. 그걸 수긍할 거라 보나.
미투 운동의 전개를 돌이켜 보자. 운동 자체는 우리 사회 성인지감수성이라는 변화의 화두를 던졌다. 큰 변혁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 휩쓸렸던 피해가 많았다. 억울한 피해도 있었고, 과한 피해도 있었다. 아내와 자녀까지 있는 유명인들이 자살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시간이 흐른 뒤 생각도 못한 판결도 이어졌다. 강간ㆍ추행 무죄는 물론, 명예훼손 유죄와 배상 판결도 숱했다. 주위에 그런 예가 간과 못할 정도로 많았다.
학교 폭력이 특정인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사용되면 안 된다. 어느 경우가 그런 경우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답변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느 사례가 확정된 것이냐는 물음에도 답은 없을 것이다. 이게 바로 지금의 상황이다. 수 없는 주장이 각계에 넘쳐나고 있다. 그 주장만으로 유명인은 일단 인격 살인을 당한다. 이래선 안 된다. 주장된 학폭의 진위를 가리는 책임 있는 분별력이 요구된다. 당연히 가동돼야 할 시스템이다.
확인된 학폭 가해자는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일반화의 혼란 속에 슬그머니 묻히려 들면 안 된다. 근거 없이 비방된 학폭은 엄단돼야 한다. 형사 처벌과 민사책임까지 추궁받아야 한다. 학교폭력 사태에서 우리 사회가 냉철히 지켜야 할 두 가지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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