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이가 있었다. 국운이 기울던 조선말이었다. 갑신정변을 일으켰지만 결국 실패했다. 미국으로 망명, 의사가 됐다. 그러다 일시 귀국했다. 새로운 매체 창간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독립신문이었다. 젊은이의 이름은 서재필이었다. 나라의 명칭은 1년 후 대한제국으로 바뀌었다. 이후 독립협회도 결성했다.
▶제호 중 뒷부분은 ‘새로운’ 신(新)과 ‘들을’ 문(聞)이 합쳐졌다. 완전한 독립을 기원하는 새로운 소식들이라는 뜻이었다. 뉴스(News)의 번역어이기도 했다. 중국에서 뉴스는 新聞(중국어 발음으로 신원)으로 통용된다. 지금도 그렇다.
▶독립신문에는 새로운 소식들을 전하는 기구라는 의미도 담겼다. 영문판인 ‘The Independent’는 외국에 조선실정을 알렸다. 관리들의 무능과 부패 등도 꼬집었다. 외세침탈에 저항하는 언론의 전통도 세웠다. 그때가 1896년이었다.
▶독립신문은 논평과 비판을 중요한 기능으로 삼았다. 서재필은 창간호 논설을 통해 “정부 관원이라도 잘못하는 이가 있으면 우리가 말할 터이다. 탐관오리들을 알면 세상에 그 사람의 행적을 알리겠다”고 선언했다. 독립협회가 해체되는 1899년 12월4일까지 발행됐다. 2012년 10월17일 등록문화재 제506호로 지정됐다.
▶반세기가 흐른 1957년 봄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창립됐다. 이 단체는 이날부터 1주일 동안을 신문주간으로 설정했다. 기념행사로 서울 시공관(현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독립신문 창간 제61주년 기념식을 열고 신문윤리강령을 선포했다. 언론계는 이를 계기로 해마다 이날을 신문의 날로 정하고, 선언문과 함께 그해의 행동지표로 표어를 제정, 실천을 다짐해오고 있다. 1주일 동안 각종 신문주간 기념행사도 펼쳐진다.
▶신문의 날은 대한제국 시절 외세침략으로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잡기 위해 헌신했던 독립신문 정신을 계승했다. 매년 4월7일이다. 자주·독립·민권 기틀을 확립하고자 순한글판으로 출발했던 기상도 이어받았다. 그때의 구국이념을 본받아 민주·자유언론 실천의지도 새롭게 다짐한다. 제1회 신문주간 표어는 ‘신문은 약자의 반려’였다. 사회는 그때의 약속을 지금도 실천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오늘은 어느새 65번째 맞는 신문의 날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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