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걷다 보면’ 보이는 세상

추위로 인해 빨랐던 걸음들은 계절의 변화와 함께 다소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바뀌고 두터운 외투도 벗어 버리는 봄이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 일상으로 인해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어쩌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스크에 가려 좋은지 싫은지 상대의 감정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여럿이 함께할 수 있는 일이 금지되고 마주앉아 차 한 잔 나누기도 조심스러워 사람 간의 사이는 멀어져 소통하기 더욱 어려워져간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상념이 고개를 들고 눈 마주치며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공감의 시간이 줄어드니 사람 간에서 느낄 수 있는 온기와 위로는 얻기 어려워 정서는 더욱 메말라가는 듯하다.

이럴 때 훌훌 털고 일어나 걸어보자. 걷다 보면 늘 다니던 골목길 언저리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났던 구멍가게 알바생의 잰 손놀림도 보이고 그 옆집 세탁소 아저씨의 뒷모습도 보인다. 골목 중간쯤 보호자를 따라 산책 나온 강아지의 볼일 보는 모습도 보이고 문 닫은 김밥집 주인의 조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발길이 가는 데로 천천히 길을 걷다 보면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잊고 있었던 과거의 일들도 떠오른다.

늘 걸었던 길을 천천히 살피며 걷거나 또는 아무 생각 없이 발길 닿는 데로 걷다 보면 의외의 장소를 알게 돼 놀라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는 과거 기억들과 교차하며 부끄러움에 괜히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기도 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마음에 괜히 뒤돌아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이러한 발견과 기억의 연상은 새로운 사유의 시간이 된다. 걷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장소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파악하는 것은 새로운 기록의 파편이 되며 잊고 지냈던 정서에 자극되기도 한다. 이러한 새로운 사유들을 두루 살피게 되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알아차리게 되는 일이기도하다.

“사르락 사르락 바람이 불어. 길을 따라 걸어 볼까?”로 시작되는 이윤희 작가의 <걷다 보면> 그림책은 걷다가 발견되는 길거리 바닥의 이미지들이다. 사슴의 모양을 닮은 바닥의 보도블록, 차량 유도를 위해 세워놓은 고깔은 놀이로 변환되고 칠에 벗겨진 건널목 표시는 쥐처럼 보이 기도하고 새끼오리처럼 보이기도 하며 비에 젖은 도로는 흡사 거대한 거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느릿한 걷기를 통해 보이고 발견되는 것들은 의외의 기쁨을 주며 실리를 따지지 않아 어쩌면 순수로 가는 길인지도 모를 일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중요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들이 얼마나 많은지….

천천히 걷다 보면 알게 되는 새로운 발견과 성찰의 시간은 스스로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고 조금 더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시간들이다.

걷기를 통해 얻게 되는 소확행이다.

손서란 복합문화공간 비플랫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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