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비원 인권, 법보다 가슴으로 품자

지난 10일은 숨진 최희석 경비원의 1주기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일하던 그는 지난해 5월10일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파트 단지 내 2중주차 문제로 입주민에게 폭행 ‘갑질’을 당한 뒤이다. 최씨 사망 한 해가 지났지만 경비원들은 ‘갑질’ 고통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일 자동차 관련 온라인커뮤니티에 올라온 인천 송도 아파텔에 주차한 벤츠차량 운전자의 협박성 메모가 공분을 샀다. 통행로에 주차한 이 차량의 앞 유리에는 “긴말 안 한다. 딱지 붙이는 XX 그만 붙여라. 블랙박스 까서 얼굴 보고 찾아가서 죽이기 전에”라는 등의 메모가 붙었다. 물론 차량 주인이 경비원에게 보내는 글이다. 통행로를 차지한 차량에 대한 입주민의 항의는 빗발 칠테고, 막상 이 글을 보니 차량 이동을 해 달라는 전화를 걸기도, 경고 스티커를 붙이기도 엄두가 안나니 경비원의 속은 시커멓게 탔을 터이다.

지난달 인천 미추홀구에서는 경차 주차구역에 주차한 외제 고급 승용차에 경고 스티커를 붙인 경비원이 곤혹을 치뤘다. 결국 경비원은 30대 젊은 차주에게 모욕을 당한채 붙였던 스티커를 스스로 제거했다.

이처럼 사사건건 따라 붙는 심리적 압박과 고통은 직접 폭행이나 폭언과 다를 바 없다. 가슴이 시커멓게 타 들어가도 경비원은 하소연 할 곳이 없다. 아파트 경비원 대부분은 파견·용역·도급 등 위탁관리 형태의 간접 고용인데다, 단기간 계약조건이다. 용역회사, 아파트 관리 사무소, 입주민까지 사방이 ‘슈퍼 갑’이다. 어디 한 곳에라도 밉보이면 일 자리가 위태로우니 억울해도 숨을 죽일 뿐이다.

다행히 공동주택 근로자에 대한 괴롭힘 방지를 구체화한 개정 공동주택관리법이 최근 마련됐다. 이번 개정법 시행에 따라 입주자 등은 경비원에게 개정법 또는 관계 법령에 위반하는 부당한 지시나 명령을 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인천시도 입주민들의 갑질 근절을 위해 ‘인천시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개정했다. 개정한 준칙은 입주자는 경비원, 미화원 등 근로자에게 폭행, 폭언 등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법과 제도가 경비원들의 인권을 지켜 줄 수 있다고 믿는 이는 많지 않다.

그동안 수 많은 경비원이 경비업법 상 주 업무가 아닌 주차·택배관리 업무까지 하다가 입주민에게 ‘갑질’을 당했다.

이번에 마련된 법과 제도 역시 경비원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진다.

당초에 법으로 해결 될 일이 아니다. ‘나를 도와주는 고마운 가족’이라는 따뜻한 마음 한 자락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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