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바로잡힌 ‘살인 누명’ 특진…윤성여씨 “연금 환수해야”

▲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누명을 썼던 윤성여씨가 지난해 12월 수원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가족과 지인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경기일보 DB

이춘재 대신 무고한 청년에게 살인 누명을 씌웠던 경찰관 5명의 특진이 32년 만에 취소됐다.

죄가 없이 20년의 수형 생활을 감당한 윤성여씨(54)는 연금까지 환수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경찰청은 올해 3월 말 열린 심사위원회에서 지난 1988년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윤씨를 검거했던 경찰관 5명의 특진을 취소했다고 13일 밝혔다.

사건 발생 이듬해인 지난 1989년 3명은 순경에서 경장으로, 2명은 경장에서 경사로 승진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윤씨가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고 누명을 벗자, 윤씨를 체포한 공로로 특진했던 경찰관의 처분에 대해 검토해왔다. 당시 경찰관의 가혹 행위가 재심 과정에서 드러난 만큼 특진을 취소할 사유가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최종 계급은 그대로 유지되고 특진에 따른 급여 인상분도 회수되지 않았다. 5명 모두 퇴직한 지 10년 이상 지났고, 2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또 노동법상 현직 때 받은 급여는 근로 대가로 인정되는 탓에 회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인사 기록에 특진 취소 사유를 남겼고, 경찰이 과거를 반성하는 교훈으로 삼는 데 의미를 둔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이날 경기일보와의 통화에서 경찰의 조치가 아쉽다는 입장을 전했다. 윤씨는 “경찰 측에서 의견을 물었을 때 잘못 지급된 국민의 세금을 꼭 돌려내달라고 했는데, 서류상으로만 특진을 취소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20년 이상 억울했던 시간은 이미 지나간 세월이라 해도, 그들이 양심이 있다면 받지 말았어야 했던 임금과 연금을 반납해야 할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윤씨의 무죄 판결을 도왔던 박준영 변호사는 “너무나 오래 걸렸지만 잘못이 바로잡혀 다행”이라며 “잘못된 건 언젠가 반드시 밝혀진다는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씨의 사건은 지난 1988년 9월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P양(당시 13세)이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채 발견되며 시작됐다. 이듬해 범인으로 지목된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항소했지만, 2심과 3심 재판부는 모두 기각했다.

윤씨는 20년을 복역한 뒤 지난 2009년 가석방됐고 지난해 수원지법에서 열린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었다. 재심 과정에선 당시 경찰의 불법체포와 감금, 폭행 등 가혹 행위가 드러났고 유죄 증거로 쓰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서까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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