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보광사 위한 특별 서예전 연 '묵전 김황섭'

한 획, 한 획… 나눔의 이치 새기다
작품 판매금 1억 전액 보광사에 기탁...“오체는 아무나 쓰나” 스님 조언에,
배운 만큼 아낌없는 재능기부 실천 “여든살까지 전시 108번 열고 싶어”

김황섭씨는 "남에게 배운 재능을 더 많은 이들에게 이롭게 쓰는 게 참된 이치"라며 서예를 통한 나눔의 삶을 살 것을 밝혔다. 김 씨 뒤로 그의 작품 '베풂'이 보인다. 조주현기자

한 획 한 획 쓴 붓글씨에선 부처님의 말씀이 새겨졌다.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활용하고 마음에 새길 삶의 이야기다. 있고 없고를 따지지 말라는 ‘無我(무아)’, 자신을 이기는 자 그 무엇보다 강하다는 ‘自勝最强(자승최강)’ 등등이 특유의 미감이 담겨 있는 서예로 살아 움직였다.

부처님 오신날인 19일 남양주 천마산 동쪽 기슭에 있는 보광사에서 특별한 서예전이 열렸다. 묵전 김황섭(60)의 <보광사 토지 대작 불사전-어제의 역사 오늘의 꽃>. 50여점의 작품이 걸린 전시는 이날 단 하루 열렸다. 역사와 사연이 많은 보광사에 작품 판매금을 기탁하고자 마련됐기 때문이다.

묵전은 “보광사는 고려의 숨결을 간직한 1천 년 고찰이지만 전란으로 사찰의 토지 대부분이 남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며 “졸작이나마 붓 가는 데로 작품을 내어 재능 보시를 하자고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보광사는 과거 스님들이 나라를 구하는 데 쓰려고 토지와 재원을 처분해 법당 일부인 삼성각, 환도다헌, 공양간 등이 모두 남의 손에 넘어가 있다. 절을 재건하다 보니 사찰 소유가 아닌 법당 앞 토지 1천56㎡가 걸림돌이었다.

묵전은 현금보다 자신이 배운 재능을 사찰을 위해 보시하는 게 더없이 좋다고 여겼다. 그의 바람대로 수년간 작업한 작품 50여점의 판매 수익금 1억원을 보광사 토지 매입에 쓰도록 기탁했다.

그가 서예를 배운 건 10년 전이다. 불교 신자로 절에서 장엄 작업을 해오며 솜씨를 인정받던 그는 봉선사 한암 정수스님에게 사사 받았다. 이후 매일 먹을 갈며 정진하던 그는 4년 전 봉선사와 인연을 맺었다. 승려이던 친구가 열반해 보광사에서 화장한 것이다. 이후 그의 서예 실력을 알아본 주지 선우스님은 신도들을 위한 서예반을 부탁했다. 손사래를 치는 그에게 스님은 호통을 쳤다. “오체는 아무나 씁니까. 남들에게 재능을 물려주고 나누는 것보다 큰 선물은 없는데, 생각 좀 해보시지요.” 스님의 호통은 서예반 발족뿐만 아니라 재능기부를 하며 아낌없이 나누고 가겠다는 삶의 목표로도 이어졌다.

때론 빠르고 힘찬 필력으로 자형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며 예술성을 담아내지만, 그의 작품에는 그가 말하는 삶의 이치가 담겼다. 모든 현란함을 덜어내고 순수한 붓과 먹의 우직함으로 빚어낸 간결한 획이다.

올해 환갑을 맞은 그는 여든 살까지 사찰에서 108번의 전시를 여는 게 목표다. 전시에 판매된 수익금은 사찰을 위한 일에 사용할 예정이다. 이미 향후 5년간의 일정은 그의 머릿속에 꽉 차 있다.

“남에게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만 취하면 그것은 나쁜 것이지요. ‘따따블’로 많은 이들에게 나누고 내주는 게 배움의 참뜻 아니겠습니까.”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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