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法석] 물고문으로 딸 숨진 그날,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열 살 조카를 수차례 폭행하고 물고문한 끝에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무속인 A씨 부부의 3차 공판이 8일 오후 수원지법에서 열렸다. 검찰은 이날 A씨가 직접 촬영해왔던 학대 영상들을 증거자료로 공개했다. 사진은 왼쪽 늑골이 부러진 탓에 A씨의 겁박에도 왼팔을 들어올리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피해아동의 생전 모습. MBC PD수첩 방송 화면 캡처
열 살 조카를 수차례 폭행하고 물고문한 끝에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무속인 A씨 부부의 3차 공판이 8일 오후 수원지법에서 열렸다. 검찰은 이날 A씨가 직접 촬영해왔던 학대 영상들을 증거자료로 공개했다. 사진은 왼쪽 늑골이 부러진 탓에 A씨의 겁박에도 왼팔을 들어올리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피해아동의 생전 모습. MBC PD수첩 방송 화면 캡처

‘물고문 살인사건’ 피해아동의 친모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어떻게 내려질지 주목된다.

그는 숨진 딸의 친권자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학대 사실을 알고도 방치했던 피의자가 되기 때문이다.

수원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김원호)는 지난 9일 아동학대 방조 및 유기ㆍ방임 혐의로 친모 H씨(31)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모 A씨(34ㆍ무속인) 부부의 물고문으로 열 살 아이가 세상을 떠난지 4개월, 그 만행이 담긴 영상이 법정 공개된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앞서 H씨는 지난달 31일 A씨 부부에 대한 합의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딸을 잃은 피해자로서 딸을 죽인 가해자의 형량을 줄이는 데 동의했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딸의 죽음 이후 친모가 보인 행보를 되짚어보면 피의자라는 사실에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경기일보 취재 결과, 지난 2월8일 H씨는 딸의 사망을 알고도 병원을 찾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출석을 요구했지만, 계속 거부했다. 사건 발생 열흘 만에 A씨 부부가 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고 경찰에서 강제수사를 예고하자 뒤늦게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수사를 맡았던 경찰들은 딸을 잃은 엄마의 모습으로 보기 어려웠다고 입을 모았다.

H씨는 수년 전 이혼하고 남편과 자녀를 한 명씩 맡아 양육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직장, 이사 등의 문제로 지난해 11월 초 용인지역 같은 동네에 사는 언니 부부에게 딸을 맡겼고, 그로부터 3개월 만에 아이는 세상을 떠났다. 아이에겐 휴대전화가 있었지만 이모에게 맡겨진 뒤 별다른 사용기록이 없던 것으로 파악됐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활동가 등이 지난 8일 '열 살 조카 물고문 살인사건'의 주범 A씨 부부의 3차 공판을 앞두고 수원지검 앞에서 이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장희준기자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활동가 등이 지난 8일 '열 살 조카 물고문 살인사건'의 주범 A씨 부부의 3차 공판을 앞두고 수원지검 앞에서 이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장희준기자

아이는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지만, H씨는 이미 학대 사실을 알고 있었다. A씨로부터 딸의 양쪽 눈에 멍이 든 사진을 전송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정한 엄마는 딸의 참혹한 몰골을 보고도 ‘이모 손 닿으면 안 낫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딸의 사망 전날에는 ‘아이가 귀신에 들렸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A씨의 말에 직접 복숭아 나뭇가지 한 묶음을 사다 주기도 했다. 아이가 정상적으로 걷기 어려울 때까지 학대하는 데 쓰인 이른바 ‘동도지(東桃枝)’는 무당이 귀신을 쫓는 주술을 행할 때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H씨는 현재까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검찰은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된 A씨 부부 재판에 H씨 사건을 병합 신청할지 검토 중이다. 이들 모두 초범이라는 점과 고의성이 없다는 변론으로 형의 감경을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엄마에게 외면당한 아이는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고, 이를 알고도 방치한 친모는 살인에 방조하고 공조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반드시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건 병합 여부에 대해 검찰 출신 장성근 변호사는 “두 사건 모두 피해자가 같다는 점에서 병합하여 판단하는 게 죄에 대한 응당한 양형을 내리기에 적합할 것으로 보이며, 재판의 진행에 있어서도 효율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한편 A씨 부부에 대한 4차 공판은 내달 1일 열릴 예정이며, 피고인 신문으로 진행된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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