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 기획] 2개의 묘지에 2개의 계급…주먹구구식 호국영령 모시기?

지난 55년간 제사를 지냈던 6·25전쟁 전사자 고(故) 박정래 일병의 묘역이 전혀 다른 사망자의 묘로 드러나면서 유족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24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 새로 안장된 고 박일병의 묘역에서 동생 박춘래(84)씨가 참배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유족이 박씨로 알았던 1960년에 조성된 군산 군경합동묘역의 묘. 김시범기자
지난 55년간 제사를 지냈던 6·25전쟁 전사자 고(故) 박정래 일병의 묘역이 전혀 다른 사망자의 묘로 드러나면서 유족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24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 새로 안장된 고 박일병의 묘역에서 동생 박춘래(84)씨가 참배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유족이 박씨로 알았던 1960년에 조성된 군산 군경합동묘역의 묘. 김시범기자

“어머니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남의 유해를 아들로 알고 돌아가셨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6.25 한국전쟁 참전 전사자인 故 박정래 일병(1931년생, 군번 0606305)의 무덤이 2곳인데다, 계급도 다르게 표기됐지만 경위는 오리무중이어서 유족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고인의 동생인 박춘래씨(84ㆍ고양시 덕양구 삼송동)에 따르면 고인은 21세 때인 1951년 4월4일 입대, 육군 7사단에 배속돼 5개월 만인 같은 해 9월4일 강원 양구 백석산 1차전투에서 전사했다. 유족들은 같은 해 9월께 ‘행방불명’ 전보를 받았다.

유족들은 이로부터 9년이 지난 1960년 군산시로부터 유해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유족들은 이에 故 박정래 ‘이등중사’의 유해(뼛가루)를 전달받고, 이를 군산 군경합동묘지에 안장한 후 매년 군산에 내려가 제사를 지냈다.

그렇게 55여년 동안 군산을 오갔다.

그러나 지난 2015년 유족들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부터 故 박정래 ‘일병’으로 추정되는 유해를 찾았으니 유전자검사를 해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이후 고인의 막내동생인 박춘래씨와의 유전자검사 결과, 새로 발굴된 유해가 고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새로운 유해가 지난 2012년 10월24일 전사장소인 백석산에서 군장고리 등 유품과 함께 발굴했다고 설명했다.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군산시 임피승화원에서 화장, 지난 2015년 6월26일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에 안장됐다. 전사자 묘지가 2개가 됐다.

유가족들은 경위를 파악해 합장을 하려고 했지만 이도 여의치 않다.

박춘래씨는 “몇년 전부터 직접 경위를 파악하고, (현재 2곳인 묘를) 한곳으로 합장하기 위해 국방부, 군산시 등과 협의 중인데 진전이 없다”고 토로했다.

남상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유가족팀장은 “대전현충원의 유해가 고인이시고, 계급도 일병이 맞다”며 “몇십년 전까지는 지자체들이 국방부와 협의 없이 보훈사업을 많이 진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엔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육군 인사사령부 관계자도 “군산에 모셔진 유해와 관련, 아는 바가 없다. 관련 자료도 유해발굴감식단이 유해를 발굴한 이후에야 작성됐다”고 밝혔다.

군산시 측은 관련 자료가 없어 경위를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군산시 복지환경국 관계자는 “예전에 모셔진 분들 같은 경우에는 묘적부에 성함과 계급 정도만 적혀 있다. 현재로선 그 외에 남아있는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남상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유가족팀장은 합장과 관련, “유족과 군산시 측이 군산 군경묘지에 안장된 내용물 확인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산시는 내용물 확인에 대해선 이름이 같다고 동일인임을 확신할 수 없다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양=유제원ㆍ최태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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