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시흥 시화공단 내 스펀지 공장에서 발생했던 대형화재가 그대로 재현(再現)됐다.
과거에도 이번에도 의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스프링클러는 설치되지 않았고, 결국 피해를 막지 못했다.
지난 2일 오후 9시58분께 시흥시 정왕동 시화공단 내 스펀지(우레탄폼) 제조업체 K사 공장에서 큰불이 나 소방당국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번 화재로 지상 3층 높이의 건물 5개 동(1만1천790㎡) 전체에 불길이 번졌으며, 1개 동은 전소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공장 내부에는 화학 원료를 비롯한 가연물이 많아 초기 진압에 애를 먹었으며, 공장 앞에 수만t의 석유를 저장해 둔 유류탱크 6기가 위치해 있어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위험까지 높은 상황이다. 소방당국은 해당 지점을 우선으로 연소를 저지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화재 초기 현장에 있던 K사 직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기역(ㄱ)자 형태로 5개 동이 위치한 상태에서 상단부 중앙의 ‘숙성실’ 건물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숙성실은 ‘스펀지’라 부르는 연질 폴리우레탄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포시킨 스티로폼을 냉각하는 장소로 알려졌다.
경기일보 취재 결과, 이곳 K사 공장에선 지난 2007년 9월10일 이번 화재와 같은 방식으로 불이 났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에도 숙성실에서 처음 불이 났고,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합성수지, 인쇄잉크 등을 생산하는 주변 공장 4곳으로 불길이 번지면서 피해 규모를 키웠다. 과거 화재의 원인은 끝내 ‘미상’으로 결론났으나, K사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피해를 입은 공장들에 각각 수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했다.
K사는 한 차례 대형화재를 겪고 수십억대 손실까지 입었지만, 이후로도 공장 내부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의무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14년 동안 달라진 게 없는 건 법 체계도 마찬가지. 인명 참사가 벌어진 노유자(老幼者)시설이나 의료시설에 대해서는 법 개정을 통해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K사처럼 화재 이력이 있는 데다 가연물을 다루는 공장들은 여전히 법망을 비껴가고 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스프링클러는 초기 진화에 가장 효과적이지만, 법 개정 전에 지어진 공장들은 여전히 의무 설치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며 “위험물을 다루는 공장이나 화재 이력을 가진 공장에라도 소급적용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은택 시흥소방서 재난예방과장은 “최초 화재 감지시설 신고로 현장에 출동했다”며 “해당 건물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닌 탓에 스프링클러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소방당국은 3일 0시33분을 기해 초진 판정을 내렸으며, 잔불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정민훈ㆍ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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