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의 단죄는 누가 할 수 있는가. 범죄자에 대한 신상털기는 정당한 일인가. 우리 사회에서 생각해 봐야 할 담론이 추리소설로 옮겨졌다. 전 세계 베스트셀러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작가이자, 현존하는 일본 추리 소설계 최고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백조와 박쥐>(현대문학 刊)다.
히가시노 게이고 데뷔 35주년을 맞아 출간된 이 소설은 한국어판 기준 총 568쪽, 원고지 2천 매가 넘는 대작이다.
이야기는 3년 시간차를 두고 두 개의 연결된 살인사건이 발생한 데서 시작한다. 평범한 삶을 살던 가해자의 아들은 사건이 조명되며 인터넷에 신상이 공개되고 일상이 무너진다. 피해자의 딸 역시 뒤바뀐 일상 속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작가는 소설 전체에 걸쳐 현대사회의 불관용과 온라인상의 폐해, 악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또 소문에 소문을 타고 들은 이야기가 사실과 진실로 둔갑하고 이를 근거로 사회적 판결을 내리는 게 정당한지 묻는다. 공소시효 폐지의 소급 적용 문제, 형사재판 피해자 참여제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에 범죄자와 가족 신상 털기, 공판 절차의 허점 등 굵직하고 무거운 사회적 이슈를 다루며 우리 사회를 숙고해보게끔 한다.
작품은 히가시노의 주요 작품들을 우리말로 옮겨온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양윤옥이 번역을 맡았다. 35주년 기념작 『백조와 박쥐』는 히가시노가 자신의 추리소설 본령으로 돌아가서 더욱 원숙해진 기량으로 써낸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33년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 두 개의 살인 사건과, 이에 얽히는 인물들이 저마다 진실을 좇아가는 장대한 이야기를 탄탄한 틀 안에서 흡인력 있게 풀어낸 점이 돋보인다. 굵직한 사회적 논의를 아우르면서도 추리소설 본연의 재미를 잃지 않으며 차곡차곡 서사를 쌓아나가 놀라운 결말에 다다르는 데는 ‘역시 히가시노’라는 찬사가 나온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견지해온 작가가 드러낸,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뜨거운 드라마도 볼 수 있다. 값 1만8천원.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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