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경문왕 복두장이의 후예

대선 정국이 혼탁한 가운데 비방과 야유가 국민의 이목에 낚싯바늘처럼 드리워지는 형국이다. 배척과 힐난은 당당하고, 수용과 자성의 태도는 미미하다. 대권이 시정(市井)의 무슨 이권인가. 국민 다수가 불쾌, 아니 분노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세상사 모두 단순치 않아 문제다. 그 부박한 현황에 개탄하다가 우리 언론의 지난 모습과 대조하면 어느덧 씁쓸하나마 누그러질지도 모르겠다.

왕조시대에 언로가 보장된 때가 있었다고 해도 언론은 왕권에 예속된 채 그 유지에 그쳤고, 일제 식민시대에는 어떤 비판도 총독부의 통치전략 검열을 거쳐 폐기를 모면한 순치의 여적이었다. 해방 이후에는 정권들이 권력을 유지하려다 독재화하면서 무엇보다 언론을 억압하고 침해했다. 심각한 갈등은 민주화 장정을 촉진했으며 최근의 재판정에까지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우리 언론은 간고의 여정 끝에 겨우 1987년 이후라야 정권의 견제와 자기검열에서 벗어났다고 하겠다. 그런데 2019년에 중국의 반체제 작가 옌렌커(閻連科)가 방한해 광우병 시위를 언급하며 정부와 권력을 자유롭게 비판하는 한국의 언론을 몹시 부러워했어도 우리는 별 감응이 없었던 듯하다. 이미 언론의 각종 의혹 제기를 당연시했고, 혹 허위 조작 사례가 있어도 대수가 아니며 언론들의 상호 검증과 국민의 시시비비 판별을 믿어왔기 때문이다.

지난 8월31일에 여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본회 단독 상정을 중단하고, 야당과 숙의 기간을 갖기로 야당과 합의했다. 국가의 파탄을 제어한 다행한 조치였다. 이번 여야의 합의에 고무돼 국민 다수가 ‘소통과 절제로 기존 정치문화를 혁신하라’고 제언할 것 같다. 상대를 제압하려는 패도 추구에 국민은 분노할 뿐만 아니라 지겹기도 하다. 내년 대선이 배척과 힐난의 관행대로 치러진다면 여야와 진영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국가의 회복하기 어려운 큰 상처가 될 것이다. 이번 합의처럼 상대를 인정하고 절충하는 정치문화를 조성하며 대선을 치르면 통합지향 정권을 출현시킬 가능성이 있다. 어느 쪽이 권력을 담당하더라도 상대를 아무래도 배려하는 노선에서 일탈하기가 저어될 것이다.

새 언론중재법 개정안 마련이 그 시작이 되기를 축원한다. 여야는 여야를 넘어서서 민주 공화체제에서 언론이 무엇인지 새삼 살폈으면 하며, 우리 민중이 저 먼 신라시대부터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삶과 생리의 자연스러운 기본 발현으로 갈망하고 공명해왔다는 지향도 참조하기 바란다.

신라 경문왕의 복두장이(일종의 이발사) 이야기. ‘경문왕의 귀가 자라 당나귀 귀가 됐다. 그만이 알았고 평생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죽기 직전의 와중에도 그는 자타 억압에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서라벌 입구 도림사의 대나무 숲에 들어가 “우리 임금 귀는 당나귀 귀, 우리 임금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고, 그러고 나서야 편안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었다… .’(<삼국유사> 권2)

김승종 연성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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