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지역 예술공간 운영하는 아무개의 첫 인사

2010년 즈음 경기도 문화예술의 주요한 흐름으로 대안예술공간의 등장과 약진을 뽑을 수 있다. 당시 모두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그 지역의 대안예술공간을 방문하는 것이 하나의 이벤트로 느껴졌었다. 안산을 방문하면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를 들렀다가 원곡동에서 베트남 쌀국수를 먹고 돌아왔다. 수원에 가면 ‘대안공간 눈’을 방문하고 전통과 동시대가 만나는 접점에서 벽화골목을 감상했다. 뜨거운 매 여름, 안양 석수동의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에서 석수아트프로젝트(SAP)가 열렸다. 전 세계의 작가들이 오래된 석수시장의 빈 점포에 스며들어, 낯설지만 신기한 예술적 사건들을 펼쳤다.

그 후 10년 동안 가운데 가슴이 뻥 뚫린 도나스 같은 경기도를 뱅뱅 돌아, 평택시 신장동 미군기지 앞에 서 있다. 2020년 평택 출신의 빈울 작가와 함께 ‘협업공간_한치각’이라는 문화공간을 열게 됐다. 오산미군기지가 주둔해 있는 신장동은 그들을 찾아 온 전 세계 다양한 인종들이 함께 모여 살며 독특한 지역색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다양한 문화와 사람이 만나 지금은 ‘경기도의 이태원’이라는 별명으로 이국적인 정취를 뽐내고 있지만 역사 속 신장동은 기지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산미군기지 일대가 고향인 두 문인이 박석수와 이규황이다. 작품 속에서 그들은 미군에게 소박맞는 누이가 됐다가, 징병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군인이 됐다가, 가족을 위해 궂은일 마다 않던 젊은 아버지이자 대한민국의 청년이 하루아침에 주검으로 발견되기도 한다. 그들의 작품 안에는 자신들이 겪었던 기지촌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자신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대한민국의 근대 모습이기도 하다.

신장동의 기억을 담고 있는 장소와 사람이 도시 개발붐과 연로하신 나이로 빠르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시대의 증언자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간의 제약이 코로나19 펜데믹이라는 전염병 상황에서도 ‘협업공간_한치각’의 운영을 결정하게 된 이유였다. 그렇게 2020년 경기문화재단의 후원으로 마침내 문을 열게 됐다.

‘한치각’은 건축의 기본재료인 각목의 순 우리말이다. 신장동의 이야기를 담는 ‘기본을 마련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붙인 이름이다. 이 작업은 누구 한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목소리를 보태야 하고 여러 분들이 기록하고 남기는 협업 과정이 필요하기에 ‘협업공간’이라는 이름을 더했다. 현재는 예술가와 지역 문화 컨텐츠 발굴, 기록 프로젝트, 전시, 문화예술 프로그램, 축제를 운영하고 있다.

혼자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선배들이 갔던 그 길의 시작점 어딘가에 와 있는 것 같다. ‘협업공간_한치각’도 10년이 지나,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생강 협업공간 한치각 공동대표·문화예술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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