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을 돌며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돈을 빼는 승객, 예약했던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자는 승객, 통화 중 거액의 현금을 전달하겠다는 말을 하는 승객.
택시기사들의 예리한 눈썰미에 걸려든 보이스피싱 수금책의 특징이다.
택시기사 김대훈씨(가명)는 이달 8일 남양주에서 손님을 태웠다. 당초 여주까지 70㎞ 거리를 예약했던 승객은 갑자기 행선지를 바꿨고, 잠시 후 재차 목적지를 변경했다. 내릴 때가 되자 10만원이 넘게 나온 요금을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결제했다. 수상쩍은 낌새를 느낀 김씨는 손님이 내리자마자 112에 신고했고, 이내 ‘수상한 손님’은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서울에서 5천만원을 가로챈 뒤 여주에서 또 다른 피해자에게 1천만원을 뜯어내려던 보이스피싱 수거책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14건의 범행을 통해 4억5천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난 손님은 결국 구속됐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최근 택시 기사들의 신고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예방하거나 수거책을 검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지난달 10일에는 충북 음성에서 손님을 태우고 평택으로 가던 택시기사가 ‘수금을 완료했다’, ‘1천200만원을 인출했다’, ‘이동 중이다’ 등의 통화 내용을 듣고 몰래 112에 신고해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았다.
같은달 4일에도 안양의 한 지하철역에 손님을 내려준 택시기사의 눈썰미에 보이스피싱 사범이 덜미를 잡혔다. 그는 “손님이 돈 봉투를 들고 있었는데, 누군가와 계속 통화하면서 도착 시간을 재촉하는 게 이상했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확인 결과 해당 승객 역시 보이스피싱 일당 중 하나였다.
경기남부청에 따르면 올해 1~7월 보이스피싱 범죄는 3천846건 발생했다. 지난해 동기 3천553건 대비 8.2% 늘어난 수치다. 이 가운데 수거책 등을 동원해서 피해자로부터 직접 현금을 뜯어내는 ‘대면편취형’ 범죄는 2천920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1천261건보다 무려 131.6% 급증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사범 검거에 대한 택시기사들의 활약에 대해 매일 수백㎞를 운행하며 다양한 승객을 태우다 보니, 수상한 언행을 쉽게 눈치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보이스피싱 범죄 유형이 과거 계좌이체에서 대면편취 방식으로 바뀌는 경향에 따라 수거책을 태우고 이동하는 택시기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는 의견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택시기사들의 신고가 보이스피싱 피의자 검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범인 검거 또는 피해 예방에 도움을 준 택시기사들에 대해 신고 보상금을 지급할 계획이니, 앞으로도 적극적인 신고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양휘모ㆍ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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