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지난달 3일 국회에 제출됐다. 예산안 총지출 규모는 금년보다 8.3% 늘어난 604조4천억원으로 올해 예산 증가율에 비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확장적 재정기조로 사상 처음 600조원이 넘는 슈퍼예산, 국가채무 1천조원 시대를 맞이했다.
역대 정부별 국가채무 증가폭을 살펴보면 IMF 외환위기가 있었던 김대중 정부는 약 85조원에 불과했다. 이후 나랏빚은 100조원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조금씩 늘어나는데 노무현 정부 166조원, 이명박 정부 181조원, 박근혜 정부 170조원으로 국가채무 규모를 일정 부분 유지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서 국가채무 증가폭이 408조원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2017년 660조원이였던 국가채무는 2022년 1천68조원으로 60% 이상 증가하고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역시 36%에서 50%로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비교에 쓰이는 일반정부 부채는 2019년 기준 810조7천억원으로 GDP 대비 42.1% 수준이다. OECD 평균(11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수치상으로는 건전한 편에 속한다. 일본(225.3%), 영국(117.3%), 미국(108.4%)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낮은 편이다.
하지만 증가속도가 사뭇 위협적이다. 일반정부 부채는 2011년 GDP 대비 33.1%였으나 2019년 42.1%로 8년 만에 9%포인트 상승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국가부채 증가속도가 가파르다”고 인정할 정도다.
지난해 10월 한국경제연구원이 2017년부터 2020년 1분기까지 부문별 GDP 대비 부채비율 증가폭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는 25.8%포인트로 칠레 32.5%포인트에 이어 OECD 소속 국가 중 두 번째로 빨랐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른 저출산·고령화 문제와 예산 외 재정이라 할 수 있는 숨겨진 공공기관 부채 등 한국 재정의 잠재적 위험 요소로 인해 장밋빛 전망을 하기엔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부채규모가 더욱 크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부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부채가 부채를 불러오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웃나라 일본은 조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수입이 세출의 3분의 2에 불과해 매년 세입의 40%를 신규 국채 발행으로 충당한다. 국채 원리금만 250조원으로 해마다 국채를 발행해 국채 빚을 갚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예년과 달리 경기회복에 따라 세수여건이 개선됐다며 ‘확장재정→경제회복→세수증대→적자축소’가 가능한 ‘재정선순환 예산’이라고 한다. 참으로 안이한 현실 인식이다. 한번 늘어난 국가부채는 쉽게 줄지 않는다. 이제는 속도를 관리할 때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청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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