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장수가 여전히 축복인 사회를 만들자

‘장수만세’라는 지난 1973년부터 10년 가까이 방영된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장수노인이 가족들과 함께 참여하는 가족오락물로 노인이라면 누구나 출연하고 싶어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장수만세 시대 이후 50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노년기의 위상은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기대수명은 60대 후반에서 83세로 올라갔고, 노인인구 비율은 3%대에서 16%대로 뛰어올랐다.

노인의 삶도 많이 변했다. 우선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노인이 늘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자의 60% 가까이가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했다. 건강수명도 2019년 기준 73.1세로 늘어났다. 65~69세 인구의 90%, 70~74세 인구의 84%는 건강상의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글로벌 고령화, 위기인가 기회인가’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The Upside of Aging’이라는 책이 있다. 이미 전세계적 추세가 된 고령화에 어떻게 긍정적인 자세로 대처할 것인가를 소비자이자 생산자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신노년층의 잠재력에 초점을 맞춰 살펴본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선배시민’이라는 이름으로 학습하고 실천하며 공동체에 참여하는 새로운 노년상을 정립하려는 움직임이 한국노인복지관협회를 중심으로확산하고 있다.

고령화는 저출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명 연장에 힘입은 바 크다. 저출산은 분명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현상으로 그 자체보다도 인구의 도시집중이나 경제적 양극화처럼 기저에 깔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 대책이 필요하다. 반면 수명 연장에 의한 고령화는 인류의 오랜 꿈인 장수를 실현해가는 과정으로 마땅히 축복받아야 한다.

“인구 통계의 변화는 정확한 미래 예측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구변화는 한번 방향이 잡히면 좀처럼 돌이키기 힘들다. 지난 2일 노인의 날을 맞이해 수많은 매체에 노인문제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고령화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글은 많았지만 변화하는 인구구조 속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를 논의한 경우는 드물었다.

노인인구의 증가 자체를 공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자칫 노인 혐오나 고령자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일하는 인구가 사라진다’는 식의 접근보다는, 일하고 싶지만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성별, 인종, 연령 차별의 벽을 낮추는 것이 급선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주4일제 논의가 공론화될 정도로 높아진 생산성의 열매를 노인을 비롯한 모든 시민이 골고루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사회에서라면 장수는 여전히 축복으로 남을 것이다.

김지영 인천시 사회서비스원 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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