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기피·혐오’ 대상으로 누가 만드는가

학력 저하 이슈에… 일부 지역은 지정 철회...한국교평원 분석 보고서 “유의한 차이 없어”
학생들도 “좋아하는 것 찾고 살아갈 힘 얻어” 정치권·언론이 나서 논란 키우는 건 아닌지

혁신학교 학력 저하 논란이 몇 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포문은 정치권에서 열었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곽상도 의원(당시 자유한국당)은 교육부로 제출받은 2016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자료를 조사한 결과, 혁신학교의 기초학력미달 고등학생 비율이 11.9%로 전국 고교 평균 4.5%보다 약 3배 높았다고 밝혔다. 덧붙여 김상곤 교육부장관이 경기도교육감으로 재임하던 시절 경기도 학력이 전국 최저 수준에 머물렀으며, 혁신학교가 확산될수록 기초학력 미달자가 양산될 수 있다고 했다.

곽상도 의원의 발언 직후 다수 언론매체에서는 혁신학교가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증가시키고, 학력을 저하시킨다는 보도를 내었다. 2021년에도 혁신학교 학력 미달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언론 보도는 꾸준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017년 이후에는 부동산 이슈와 맞물리면서 혁신학교 학력 문제가 더 이슈화됐다. 입시 관심도가 높고 학군이 좋은 지역일수록 혁신학교가 명품 학군을 파괴할 것이며 결국 집값까지 하락시킬 것이라는 불안이 확산됐다. 그 결과, 2018년 서울 송파 헬리오시티 내 해누리 초ㆍ중학교, 가락초, 광진구 양진초 등이 주민 반발에 막혀 혁신학교 지정을 철회했다. 2019년에는 강남 대곡초, 개일초가 혁신학교로 전환하려다 학부모 반대로 무산됐다. 2020년에는 서울시교육청이 강동구 강동고와 서초구 경원중을 마을결합 혁신학교로 지정했다가 학부모 반대로 취소하게 됐다.

특히 경원중은 ‘○○○(경원중 교장 이름) 죽어서도 너를 잊지 않겠다’라는 섬뜩한 현수막과 혁신학교 지정 반대 모금이 1시간30분 만에 1천만원이 모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학계에서는 혁신학교의 학력 저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18년 ‘혁신학교 성과 분석’ 보고서(서민희 외, 2018)를 발표했다. 보고서에서는 국어, 수학, 영어 모두 혁신학교를 경험한 학생의 성적이 일반학교(비혁신학교) 학생들보다 낮았으나 학년이 올라가면서 성장률이 더 높다고 보고했다.

개인연구자들의 학술 논문도 비슷한 논조였다. 김민규와 박세진(2019)은 경기교육종단연구 자료로 혁신학교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한 결과, 초등학교의 경우 일반학교에 비해 혁신학교의 성취도가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고, 중학교의 경우 혁신학교의 학업성취도 변화율이 일반학교보다 오히려 높았다고 보고했다.

안영은과 박세진(2019)은 혁신학교와 일반학교를 성취 집단 비율과 세부적인 변화 양상으로 살펴본 결과, 혁신학교는 상중하 집단의 비율이 고르게 나타난 반면, 일반학교는 상위층과 하위층이 두텁고 고착화돼 있으며 중위층 비율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형태를 보였다고 했다. 양희원과 강유림(2019) 역시 서울교육종단연구 자료로 분석한 결과, 학업성취 면에서 혁신학교와 일반학교 간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기 때문에 혁신학교가 일반학교보다 학력 저하가 크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보고했다.

혁신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은 혁신학교 학력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전국 혁신학교 졸업생 연대 ‘까지’는 혁신학교 졸업생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한 단체이다. EBS 다큐프라임이나 팟캐스트에서 이들은 혁신학교 학력 논쟁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 있다. “우리는 혁신학교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사회 안에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안 시킨다거나 학력이 낮다는 비판은 굉장히 편협한 생각인 것 같다”(강채은), “일반고 학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업’에서 지쳐 떨어져 나가는 반면, 혁신학교에서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도 소외되지 않았던 것 같다. 입시를 위해서 효율적인 학습이 존재하겠지만, 교육이 입시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방혜주)

혁신학교를 설계했거나 근무했던 교원들은 학력 이슈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까. 이중현 전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은 한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공부란 단순히 교실에 앉아 지식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현장을 보고 기록하고, 토론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혁신학교는 공부를 가르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진짜 공부를 제대로 시키겠다는 학교이다”라고 말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혁신학교는 열악한 조건의 학교를 살려보겠다는 취지로 기획된 정책임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학업성취도를 단순하게 비교하기보다는 학업성취도의 추세를 살펴보거나 다른 변수들을 충분히 통제한 상태에서 효과를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김미영 응곡중 교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혁신학교 학력 부진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혁신학교는 아이들에게 교과 지식은 물론 점수 너머의 배움을 가르치는 곳이다. 책에 밑줄 긋고 수업 진도만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학력 부진이 야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정치권에서 제기한 지적에 답하기 위해 다음 문제를 생각해보자. 특목고와 일반고 2학년 학생들에게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동시에 보게 했다. 결과를 비교해보니 특목고 학생들이 일반고 학생들 평균보다 점수가 더 높았다. 우리는 이 결과를 가지고 특목고가 일반고보다 더 잘 가르치는 학교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특목고에 애초부터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해서 모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후자의 답을 선택했다면 학교의 학력을 특정 시점에서 단순 비교한 결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일 것이다.

혁신학교를 ‘기피’와 ‘혐오’의 대상으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정치권에서 불을 피우고 언론이 부채질한 것은 아닐까?

박세진(건국대 겸임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