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준영 칼럼] 노동의 진정한 가치

독일의 저명 철학자인 페터 비에리(Peter Bieri)는 저서 ‘삶의 격: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에서 노동은 물질적 자립이라는 면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준다고 말하며, 일 없이는 인간의 존엄도 없다고 역설한 바 있다. 하지만 MZ세대에게 이러한 얘기는 일명 꼰대들의 ‘라떼’처럼 느껴지곤 한다.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박탈된 N포세대로 대표되는 MZ세대들에게 노동은 그저 가치의 창출일 뿐이고, 가치의 창출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폐쇄된 공동체 안에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늘어나면 가치가 상승하게 되는 특성상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노동과 화폐의 가치는 달라진다.

이를 증명하듯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명 ‘코린이(코인+어린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며 코인 투자에 대한 광풍이 전 대학가를 뒤흔들고 있다. 각 대학에는 코인동호회까지 등장하며 마치 새로운 기회처럼 MZ세대에게 다가오고 있다. 얼마 전 전국경제인연합조사에서는 20~30대 10명 중 4명이 암호화폐에 투자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변해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노동이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땀 흘려 일하는 노동과는 거리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그도 그럴 것이 투자ㆍ투기로 부자가 된 사람이 주변에 적지 않으며, 기성세대들이 땀 흘려 일하는 직장이 이제 MZ세대에게는 부업이 되고 있다는 뉴스 등을 볼 때 암호화폐 시장은 달콤하고 솔깃하다. 경험을 강조하는 기성세대에 비해 MZ세대는 가능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가치평가의 수단으로 그들에게 암호화폐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최악의 실업난과 부동산가격 폭등으로 인해 청년들이 암호화폐에 투자를 많이 하는 것은 기회의 불평등이 낳은 결과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기성세대의 대표적 투자처로 여기던 아파트는 부동산 폭등으로 인해 MZ세대들에게 꿈만 같은 이야기이며, 노동력을 제공할 취업의 문턱은 점점 좁아져 자본주의 경쟁시장에서 MZ세대가 기성세대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발휘할 영역이 디지털 기반의 암호화폐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MZ세대가 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할 탈출구로 암호화폐를 선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들에게 암호화폐는 단순한 투자 수단을 넘어 화폐 이상의 가치이며 계층 이동의 사다리인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맞다 틀리다의 이분법적 사고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부인한다 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우리는 분명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그의 저서 ‘국부론’을 통해 모든 가치는 노동에 의해 생기므로 상품의 교환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노동량으로 정해야 한다고 정의했다. 현재보다 싼 값에 매수해 시간을 투입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노력으로 고부가가치를 이루고 있다고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말하지만, 과연 이것을 노동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또한 모든 사람들이 투자를 통해서만 부를 축적해 나간다면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생산이 없는 사회에서 부의 축척이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과연 그런 삶이 가치 있는 삶이라 할 수 있을까?

노동은 생산이다. 투자는 생산이 아닌 소비에 가깝다는 점을 명심하며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소망해 본다.

윤준영 한세대학교 휴먼서비스대학원 공공정책학과 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