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속도로 발전한 미디어 기술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 거라 믿었다. 그 믿음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우리의 삶은 나아졌지만 동시에 미디어는 보이지 않는 지배자가 됐다. 촘촘한 네트워크와 거대한 자본. 이 미디어가 구축한 기존 시스템을 전복하는 아티스트 주도의 개방적 협업이 진행됐다.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작가전 <캠프, 미디어의 약속 이후(CAMP, After Media Promises)>다.
CAMP는 인도 뭄바이에 기반을 둔 협업 스튜디오다. 여러 작가들이 시민, 기술자, 예술가 등과 협업하며 미디어의 문턱을 낮추는 참여적 작업을 펼쳐왔다. 이번 전시에는 ‘CCTV’가 주요 예술 매개체로 활용됐다. CCTV는 미디어아티스트 백남준이 1960년대 후반부터 매체로 적극적으로 활용한 도구다. 캠프는 여기에 주목했다. 감시의 기능을 가진 CCTV를 다른 기능으로 활용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시는 세 가지 주제로 이어진다. 각 도시에서 촬영된 CCTV를 8개 채널의 스크린을 통해 펼치는 ‘무빙 파노라마’, 서울 을지로에서 폐쇄회로 카메라로 촬영하는 ‘신작의 라이브 스트리밍’,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에 대한 ‘파일럿 프로젝트’다.
캄캄하고 거대한 극장같이 조성된 전시실에 들어서면 대형 스크린들이 무빙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뭄바이, 맨체스터, 카불, 예루살렘 등 세계 여러 도시에서 그동안 캠프가 작업한 주요작들이 8개 채널의 스크린을 통해 에세이로 구성됐다. 42분의 러닝타임 동안 각각 CCTV는 카메라와 사람이 함께 밀접하게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계 각국에서 각기 다른 시간에 촬영된 CCTV를 관통하는 주제는 노동자들의 주체성이다. CCTV에 녹화된 장면을 마치 영화처럼 보다 보면, 미디어를 통해 전 지구적인 예술표현 방식을 발현한 백남준의 예술세계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카메라의 라이브 안무>에서는 CCTV의 기능을 감시가 아닌 영화로 치환했다. 캠프는 구도심과 도시재생이 공존하는 을지로의 대림상가 건물 옥상에 무인으로 작동하는 CCTV 카메라를 세우고, 구도심과 도시재생이 공존하는 을지로 풍경을 담아낸다. 을지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활동 중인 예술가의 작업실, 제조업의 메카였던 을지로의 도시재생사업, 지역문화의 변화 등을 카메라로 찾아본다. 다양한 거리와 속도로 카메라가 시종일관 움직이며 도시에서 포착한 일들은 한 편의 영화로 태어난다. CCTV 카메라로 새로운 영화 만들기의 가능성을 엿본 이들의 작업은 기존 체제에 개입해 다른 여지를 만드는 ‘이후’를 보여준다.
캠프의 참여 작가 아쇼크 수크마란은 “‘영화는 페르시안 카페트와도 같다’는 말이 있다. 영화도 사람들이 밟고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며 “미디어의 문턱을 낮추고 매체가 전달하려는 내용을 쉽게 전해 작은 개인들의 힘, 그 힘이 모여서 캠프, 새 진영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미디어를 통해 드러낸 캠프의 전시는 마치 시대의 선언문처럼 읽힌다. ‘작은 개인의 공유와 협력은 세상을 지배하는 거대한 힘에 맞서고 변화할 수 있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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