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사과의 자세

사회부 김정규
사회부 김정규

6개월 전 화성의 한 고등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로 일하던 중년 여성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휴게실 벽에 달린 옷장이 떨어지며 그를 덮친 것이다. 이른 아침 ‘죽음의 급식실’로 향하기 전 좁디 좁은 휴게실에서 잠시 숨을 돌리던 참이었다.

의사가 내린 진단은 경추 손상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 조리실무사가 몸을 뉘인 병원 앞에서 그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의 목소리에선 절망이 짙게 묻어났다. 아픈 아내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교육 당국의 대처는 어땠을까. 경기도교육감은 사과 한 마디 없었다. 교육장도 사과하지 않았다. 교장은 피해 당사자 대신 남편을 찾아갔다. 이마저도 사고가 벌어진 지 3개월이 지나서였다. 교장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무언가를 건넸다. 돈봉투였다.

‘당신들은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진심으로 미안했다면 아내를 치료하는 담당 의사라도 찾아가서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 게 순서 아닙니까’

마음 대신 돈을 꺼내보인 교장에게 조리실무사의 남편은 이렇게 분을 냈다고 한다. 한사코 거절하는 남편을 등진 교장은 ‘교육가족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사고를 당한 조리실무사의 급여 계좌에 무작정 돈을 넣었다. 한 학교의 책임자가 보여준 사과의 방식이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게 있다. 지나간 시간은 돈으로 되돌릴 수 없고 잃어버린 건강도 마찬가지다.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도 그렇다. 모든 게 망가져버린 절망 속에 누워 있는 조리실무사를 만나 ‘정말 미안하다’ 한 마디를 건네는 게 그리 어려웠을까.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가 학생들의 끼니를 책임지다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이런 게 ‘경기교육’이 가르치는 사과의 자세인가.

김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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