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에 일곱’을 의미하는 ‘칠분(七分)은 예부터 초상화를 부르는 다른 명칭이었다. 장역(張繹)이 송나라의 유학자 정이(程?)의 제문에서 초상화를 가리키며 “칠분의 용모가 있다”라고 말한 구절에서 유래했다. 칠분은 사람의 열에 일곱만 그려낸다는 뜻이다. 그림의 한계이면서도, 각기 다른 특징을 잘 드러내는 초상화의 장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기도박물관이 지난 7일 개막한 초상화 기획전 <열에 일곱 七分之儀>은 이러한 초상화의 진면목을 살펴본다.
▲1부-칠분의 구현 ▲2부-조영석과 진재해 ▲3부-한 사람, 두 개의 모습 ▲4부-각기 다른 얼굴, 서로 다른 빛깔 ▲5부-오늘, 우리의 초상으로 나뉜 전시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려낸 한 인물의 초상화를 통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숙종 대부터 영조 대에 이르기까지 관직에 있었던 문신 이지당 조영복을 담은 두 점의 그림이 있다. 모두 18세기 조선 시대 초상화를 대표하는 뛰어난 작품으로 같은 인물이지만 드러나는 분위기는 그린 이와 시기에 따라 차이가 크다.
평복을 입은 초상화는 조영복의 아우이자 선비 화가였던 조영석이 그렸다. 그는 유배를 간 조영복을 그려냈는데, 편안한 일상복을 입고 두 손이 드러났다. 드러난 두 손은 법도와 규칙에서 벗어난 변칙으로 마치 일상 속 인물처럼 생생히 살아난 듯한 느낌을 준다. 옆에 내걸린 조영복은 어진화사 진재해가 그린 초상화로 의자에 앉아 입신양면을 한 관료의 품격이 도드라진다. 귀향 후 감찰사로 관직에 다시 오른 조영복의 모습으로 초상화가 어떻게 한 사람의 각기 다른 일부를 공교하게 잡아내는지 살펴볼 수 있다.
조선 후기 학자 <송시열 초상> 3점을 통해서도 각각 다른 송시열을, <임우 초상>에서는 수염이 없는 남성의 모습을 통해 조선 시대 내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번 기획전은 경기도박물관의 소장 유물의 강점을 잘 살린 전시이기도 하다. 도박물관이 소장한 총 250여점의 초상화 중 대표작 <조영복 초상>을 비롯한 보물 4점과 경기도 유형문화재 8점 등 총 30여 점의 작품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전시 말미에는 ‘2021 경기도박물관 초상화 그리기 대회’에 참가한 어린이들의 작품과 어린이 인터뷰가 영상으로 소개된다. 아이들이 각자 자신의 개성을 살려 다양하게 그려낸 작품 영상을 통해 전시는 박물관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옛 선인의 초상화라는 과거에서 현재를 돌아보고 또 미래를 내다보는 시간을 만들어 줬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었다.
정윤회 학예사는 “현대에 초상화를 그리는 일은 매우 드물어졌지만, 그 자리는 사진과 영상이 대신해 휴대전화 배경화면 속에, 온라인 속에 더 다양하게 자리 잡아 우리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며 “초상화가 옛것 같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생활하는 것과 사실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은 같은 인물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그려진 초상화를 보며 초상화만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날 중학생 아들과 함께 박물관을 찾은 김현지씨(50)는 "초상화만을 기획한 전시를 오랜만에 접해서 낯설 거라 생각했는데 한 인물을 두고도 다양하게 그려낸 점이 인상 깊었고 재밌었다"면서 "지금의 내 모습이 초상화로 그려지면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람객인 배현수씨(38)는 "책에서 볼 법한 인물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골고루 보게 되어 유익한 시간이었다"면서 "이러한 특색있고 의미를 가진 전시들을 접할 기회가 더욱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7일까지.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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