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무용단이 2021 레퍼토리 시즌 작품 <본(本)>을 설명하면서 ‘장르와 경계를 허물었다’는 표현을 썼다. 이보다 더 적확한 문구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파격적인 공연이었다. 이달 16일부터 18일까지 경기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본(本)>을 만나봤다.
1부 ‘제(祭)’에선 ‘백의민족’이 검은 옷을 입고 등장한다. 무용수들은 간절히 무언가를 원하는 듯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리기 시작하는데, 누군가의 기도가 곧 나의 기도가 되고 또 우리의 기도가 된다.
각도와 속도에 무딘 춤꾼이 얼마나 있겠느냐 만은 유독 그 부분들을 철저하게 신경 쓴듯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조명 등으로 무대 전체를 꼼꼼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혜원 신윤복의 ‘무녀신무’ 그림에서 한 여인이 무언가를 비는 듯한 모습처럼, 무용수들은 절실한 기도가 하늘에 닿기까지 춤을 계속한다. 이때 출연하는 소리꾼 고영열은 “흘러가는 세월에 나는 홀로 선 채로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처절한 소망을 전한다.
한바탕 의식이 끝나면 모두가 정면을 바라보고 멈춘다. 변화무쌍하면서도 일사불란한 군무들을 통해 관객들도 무용수와 함께 호흡을 나눴다. 특히 곱게 머리칼을 묶었던 여성 무용수들이 한순간 머리를 풀고 제의에 동참하는 장면에서 신나게 벌어지는 ‘굿판’을 보며 강렬함을 느꼈다.
뒤이어 펼쳐지는 2부 ‘흥(興)’에선 분위기가 반전된다. 슬픔과 고통이 진해질수록 잠재된 흥이 살아난다는 시놉시스처럼 곳곳에 흩어졌던 우리네 흥이 모여든다.
이땐 경기도극단 배우 강성해ㆍ육세진과 함께 특별출연하는 ‘뮤지컬 디바’ 배우 홍지민의 목소리와 몸짓이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는 무대 위 뿌려진 ‘꽃가루’를 치우기 위해 빗자루를 집어들고, 이 빗자루 막대가 이내 무용수들의 춤 도구가 된다.
이 장대는 관객과 무용수들 사이에 세워져 때로는 시선을 통제하는 대상이 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때로는 삶을 지탱하는 요소가 된다. 장대를 이용해 사물놀이 리듬에 맞춰 무대를 쿵쿵 칠 때 관객들의 어깨도 들썩였다.
또 2부에선 꽹과리, 명상주발, 바라 등 다양한 금속 악기가 등장하는데 이는 각박한 현대사회를 뜻한다. 차가운 악기로 따뜻한 소리가 나온다는 메시지처럼 삶도 고충 속에서 흥을 잃지 말자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지난 9월부터 경기도무용단을 이끈 김상덕 예술감독은 취임 당시 “예술가가 원하는 작품보단 관객이 원하는 작품을 해야 한다”며 “남녀노소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세우는 데 주력하겠다”고 했다. 그 말마따나 이번 신작 <본(本)>에선 전통춤의 깊은 정서와 현대 무용의 대중성이 불편하지 않게 컬래버레이션됐다. 내년 경기도무용단의 새 작품들도 기대되는 공연 <본(本)>이었다.
이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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