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우리의 모국어는 안녕하십니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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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의심했다. 한글 간판들이 즐비했다. 필자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주 부톤섬 바우바우시를 찾았을 때 얘기다. 10년이 훌쩍 지났다. 이곳의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겪은 에피소드였다.

▶바우바우시 인구 50만여명 중 찌아찌아족은 7만여명이다. 이들은 문자가 없어 고유어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그래서 채택한 게 한글이었다. 2009년이었다. 한국인 교사 1명과 현지인 보조교사 3명으로 시작했다. 한글수업을 받는 초등교는 4곳,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는 학교는 고교 2곳과 중학교 1곳 등이었다.

▶이들에게 처음 한글을 가르쳤던 정덕영 교사는 그곳에 홀로 정착했다. 그의 체재비와 보조교사들의 급여 등은 정 교사 지인들이 모은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이들의 한글사용도 12년째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한글사용을 승인했다.

▶네팔 소수민족인 체팡족과 태국 라후족 등도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성장과 세계 속 역할이 강화되면서 가속화될 수 있겠다. 한글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가장 과학적인 문자, 가장 발달한 문자, 가장 합리적인 문자, 가장 진보된 문자…. 우리만 모르는 한글의 위상이다.

▶22세기까지 지구촌 6천500개 언어 중 1천500개가 소멸한다는 학계 보고가 나왔다. 호주국립대 린델 브롬엄 교수팀의 연구 결과다. 100년 후 살아남을 언어들도 제시됐다. 영어, 아랍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히브리어 그리고 한국어다.

▶이들은 각 언어의 사용인구와 교육정책, 사회경제적 지표 등과 관련된 51개 예측변수를 놓고 분석했다. 이 결과 모국어로 쓰는 성인만 존재하고 배우는 세대가 없는 언어가 가장 먼저 소멸한다고 예측했다. 노년층에서만 사용하면 더욱 빨리 없어진다고 정의했다. 그렇게 1천500개 언어가 사라진단다.

▶한국어가 그런 언어에 속하지 않음이 고맙다. 한글은 우리의 모국어를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자다. 그래서 소중한 자존감의 영역이다. 말은 우리가 늘 숨 쉬는 산소다. 문자는 그 산소를 받쳐주는 공간이다. 경제도 문화도, 문자도 죄다 명품반열에 올랐는데 정치는 여전히 삼류를 면치 못하는 현실이 답답해 꺼낸 넋두리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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