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튀어나온 광대뼈…. 딱 어렸을 적 세상을 뜨신 외할아버지다. “할배”라고 부르며 달려가면 환하게 안아주실 것 같다. 꾸부정한 허리와 퀭한 시선까지 합치면 영락없다. 삶의 무게가 잔뜩 내려앉은 이마. 있는 듯 없는 듯한 눈썹도 그렇다. 팔순을 바라보는 한 배우의 실루엣이다.
▶잊고 살았던 모국어도 소환됐다. 깐부. 개구쟁이 시절 구슬치기 등을 즐기면서 같은 편을 불렀던 호칭이다. 구슬치기 자체가 옛날 게임이다.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 대사도 묵직했다. “우린 깐부잖아”. 극 중 목숨 같은 구슬을 상대 배우에게 건네며 읊조린 말이었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극 중의 그와 실제의 그가 한치도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그가 출연했던 숱한 영화와 드라마가 입증해준다. 최근 드라마에서도 그랬다. 해맑았다. 마냥 신난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 하자 “그만 하라”고 절규한다. 또 다른 반전도 그의 연기를 통해 이어진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었다. 몇 안 되는 대학로 터줏대감이다. ‘리어왕’, ‘파우스트’, ‘3월의 눈’ 등 200편이 넘는 작품을 소화했다. 연기에 대한 지독한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영화와 TV 출연은 허드렛일이다. 반세기 넘게 연극무대를 지켜왔다.
▶그런 그가 TV 시리즈-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말이다. 그것도 비영어권 작품에는 유난히 문턱이 높다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다. ‘기생충’과 ‘미나리’ 등도 연거푸 탈락했었다. 친구 따라 극단에 들어가면서 연기인생을 시작한 지 60년 만이다.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한국연극협회 연기상…. 연기를 천직으로 알고 살았던 배우가 받은 훈장들이다.
▶‘오징어 게임’ 인기를 뒤로하고 돌아간 곳도 대학로다. 지난 8일 막이 오른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프로이트 역을 맡았다. 같은 역에 캐스팅된 신구는 “뒤에서 작품을 받치며 조용히 자기 몫을 해내는 배우”라고 평가했다. ‘오징어 게임’ 이전 TV나 스크린에 나온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를 스님 전문 배우로 오해하기도 했다.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라는 수상 소감도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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