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 경사(48)는 가면을 쓰고 산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내와 사별한 뒤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주변 시선이 걱정돼 이런 고충을 털어놓을 수도 없다. A 경사는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까 두렵기도 하고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이 건강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부담스럽다”며 “마음동행센터에 대해 들어보긴 했지만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2. 수원지역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B 경위(55)도 사정은 마찬가지. 오랜 시간 지역경찰로 일하며 민원인과 주취자 상대에 능숙해질 법도 하지만, 매번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B 경위는 “난동 부리는 주취자를 섣불리 제압했다간 ‘과잉 진압’이란 비난을 받기 십상”이라며 “억울하고 화가 나도 참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한숨지었다.
고된 업무와 수사 과정에서 얻은 트라우마로 고통을 호소하는 경찰관이 늘고 있지만, 심리 상담을 제공하기 위한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생 치안 최일선을 책임지는 경찰관의 정신 건강을 위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3일 경찰청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6~2020년 5년간 경기지역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중 우울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진료를 받은 인원은 118명, 152명, 204명, 185명, 203명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해당 기간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경기경찰은 23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청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4년부터 각 지역 의료기관과 협약을 맺고 병원 내에 ‘마음동행센터’를 운영 중이다. 경찰관의 트라우마를 전문적으로 치료하기 위함으로, 현재까지 전국에 18곳의 센터가 설치됐다. 경기남부는 수원 아주대병원, 경기북부는 고양 명지병원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 3년간 경기남부 센터의 상담 건수는 지난 2019년 1천791건(898명), 2020년 1천194건(892명), 2021년 11월까지 2천455건(1천336명)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경기북부 센터에선 329건(187명), 833건(358명), 1천17건(454명)의 상담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들 경찰관의 심리 상담을 효율적으로 감당하기에는 상담사의 수가 턱없이 모자르다. 경기남부 센터는 2명, 경기북부 센터는 1명의 상담사가 모든 심리 상담을 전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부의 경우 상담사 홀로 모든 상담을 도맡고 있다
민범준 분당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경찰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유병률이 일반인보다 높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큰 직군”이라며 “상담사 인력을 늘리는 한편 정신건강의 문제를 쉬쉬하는 조직 내부의 분위기도 함께 개선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선 경찰관의 심리 상담 수요에 비해 상담사 등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광역센터마다 최소 3명의 상담사를 배치하고, 지구대와 파출소로 찾아가는 상담서비스 등을 확대·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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