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통행로 없고, 블랙박스는 고장 ‘안전불감증’
인천컨테이너터미널(ICT)에서 항운 근로자가 하역장비에 치여 숨진 사고(본보 14일자 7면)가 안전장비 미설치 등의 안전불감증 때문으로 드러났다. 노동계는 이번 사고가 인천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사건 1호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14일 중부지방고용노동청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12일 ICT에서는 교대근무를 하기 위해 작업장에 들어선 근로자 A씨(42)가 하역장비인 야드 트랙터에 치여 숨졌다. 사고를 낸 운전기사 B씨(52)는 작업 도중 A씨를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사고는 안전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근무 환경 때문으로 확인됐다. 사고가 난 현장 인근에는 별도의 ‘안전통행로’가 없다. 하역 근로자들은 컨테이너를 고박해 놓은 사이로 안전장치 없이 위험한 ‘곡예 통행’을 해야하는 실정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상 사업주는 작업장으로 통하는 장소와 작업장 안에 근로자가 사용할 수 있는 안전한 통로를 만들어야 하지만, 터미널 운영사인 PSA(피에스에이)는 이 같은 조치를 하지 않았다.
ICT에서 일하는 C씨는 “사고 당시 밤이어서 잘 안보이기도 했는데, 컨테이너 사이마다 사람이 다니니까 늘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며 “통행을 최대한 제한할 수 있게 서로 무전을 교환하지만, 역부족”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야간 작업을 위한 야광 통행선이나 경고등은 물론 차량 통행을 감독하는 신호수도 따로 배치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고를 낸 야드 트랙터(트레일러)에는 블랙박스도 있었지만, 고장 나 작동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야드 트랙터의 관리·감독 의무는 PSA에 있다.
PSA는 사고가 난 뒤인 지난 13일 뒤늦게 고용노동부에 ‘재발방지계획서’를 제출했고, 해당 계획서에는 안전통행로에 관한 내용이 담긴 상태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이미 사고가 발생한 만큼 부분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숨진 근로자를 고용한 업체의 상시근로자 수가 몇 명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며 “1차 현장조사에서 작업장의 안전조치 의무 소홀 정황이 있었던 만큼 추가 조사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어 “인천 1호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이른 시일 내에 적용 여부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한편, 이날 PSA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경찰조사를 받고 있어 답변이 어렵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김지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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